韓, 당대회 '대남 유화메시지' 기대
北, 대북성과 목마른 韓에 여지줄 가능성
자력갱생 강조 北, '독자노선' 재확인할 수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귀결된 북한의 대남 대적사업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보류' 지시로 잠정 중단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일방적 대남 대적사업에 대한 이렇다 할 유감 표명도 없는 상황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내년 1월로 예정된 북한의 제8차 노동당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새국면을 맞을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3일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의 대담에서 "지난 6월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며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다"면서도 "6월 말 이후 북에서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며 전체적으로 상황이 관리되는 국면을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지난 9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북측의 이례적인 사과 표명 △지난 10월 김정은 위원장의 열병식 대남 유화메시지 등을 거론하며 "전체적으로 상황이 유턴되면서 새로운 정세 변곡점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며 한 해를 마무리하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 해상에서 총살된 뒤 불태워진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보다 김 위원장이 지난 10월 열병식에서 "사랑하는 남녘동포"라고 발언한 데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장관은 "1월 초에 북한 신년사부터 8차 당대회까지 그들의 전략적 방침을 밝히는 정치적인 이벤트가 있다"며 "남쪽과 관련해 좀 더 긍정적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극적인 접근은 해올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부분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南北관계 '징검다리' 삼아
北美대화 꾀하려 할 가능성"
상당수 전문가들은 북한이 8차 당대회를 계기로 대북 성과에 목마른 문 정부를 향해 유화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을 '광견병에 걸린 개'에 비유하며 "때려죽여야 한다"고 했던 북한이 한국을 '징검다리' 삼아 향후 북미협상에 대비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김일기 책임연구위원과 이수석 수석연구위원은 '북한 8차 당대회의 전략노선 및 대남정책 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북한이 8차 당대회를 전후로 기존 강경정책에서 유화정책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주요인선 등을 마치며 본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해 향후 남북관계를 북미대화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책임연구위원과 이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 시대 북한이 남북 경색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틀'로 고위급회담을 선호해왔다"며 "바이든 행정부와 대화가 어렵고, 국제사회 대북제재 국면이 지속될 경우 출구전략으로 남북 정상회담·고위급회담을 전격 제의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4차 핵실험으로 위기가 고조되던 지난 2016년 5월, 7차 당대회를 개최하며 남북 군사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한반도 정세-2020년 평가 및 2021년 전망' 보고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직거래를 통해 북미관계를 발전시켜온 북한이 바이든 당선인 측과는 연결고리가 없다"며 "내년 초 문재인 정부가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접근을 조율한다면 북한이 '선남후미(先南後美)'로 정책을 전환할 가능성 있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은 남측을 압박하는 가운데 의존하는, 양면적인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많다"고 부연했다.
지난 2년간 '韓 역할론' 한계 드러나
"北美 개선없이 南北 선행할 수 있나"
일각에선 북미대화 재개에 앞선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 개선 없이 선행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바람'과 별개로 2019년 2월 이후 2년 가까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선행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 정부는 남북미 교착국면이 이어진 지난 2년여 동안 이렇다 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올여름 이후로는 '남북 물물교환' 등 독자 대북사업을 추진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대북제재 저촉 문제로 사실상 무산됐다. 이렇듯 문 정부의 '제한적 운신 폭'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남한 역할론'을 새롭게 평가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들은 '동맹 존중' 의사를 밝힌 바이든 당선인이 한국의 적극적 움직임을 용인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문 정부는 바이든 당선인 측과 '접촉'조차 이뤄내지 못한 상황이다.
'자력갱생' 강조하는 北
유화 메시지 배제할 가능성도
'자력갱생'을 연일 강조하고 있는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와의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독자 노선'을 천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이인영 장관과의 대담에서 "요즘 북한 노동신문을 보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 싶은 '그림'이 있다"며 "새로 지은 건물 꼭대기에 '자력갱생' '일심단결'이라는 문구가 계속 등장한다. 자력갱생을 강조한다는 건 8차 당대회 이후 '정면돌파'하겠다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대북제재·코로나19·수해 '삼중고'에 시달려온 북한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면돌파 의지를 재확인할 경우, 문 정부가 기대하는 유화 메시지가 나오긴 어려울 전망이다.
북한은 노동신문 28일자 논설에서 자력갱생을 24번 반복하며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며 우리가 강대해지고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믿을 것은 오직 자기의 힘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