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감축 관련 공식입장
美 의회는 '거부권 무력화' 나설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각) 미 상·하원이 초당적으로 마련한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국방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국방수권법이 "아프가니스탄과 독일, 한국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대통령 권한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며 "나쁜 정책일 뿐만 아니라 위헌"이라고 밝혔다. 거부권 행사의 핵심 근거 중 하나로 해당 법안이 한국을 포함한 해외 주둔 미군의 철수·감축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헌법 2조 2항은 대통령은 육군과 해군의 '최고사령관(Commander in Chief)'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며 "얼마나 많은 군대를 배치하고 아프간과 독일, 한국을 포함해 어디에 배치할지에 관한 결정은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의회가 권한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독미군과 아프간 주둔 미군 감축 계획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주독미군과 아프간 미군의 감축을 어렵게 만든 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법안을 반대하는 핵심 명분이라고 전했다.
주한미군 철수·감축의 경우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가능성'을 거론해오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국방수권법안에는 주한미군을 현재 규모(2만8500명) 미만으로 줄이는 데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만 미 행정부가 △미국 안보 이익에 부합되고 △역내 미국 동맹들의 안보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으며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들과 적절히 논의했다는 것을 입증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이 가능하다.
노예제 옹호 장군 이름 딴 기지명 교체
'통신품위법' 유지 등도 문제 삼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신품위법' 230조 폐지가 법안에 포함되지 않은 점도 거부권 행사 사유로 명시했다.
'가짜뉴스' 논란으로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 플랫폼 운영업체와 갈등을 빚어온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업체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해당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해당 조항은 소셜 플랫폼에서 사용자가 게시한 콘텐츠와 관련해 플랫폼 운영업체의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노예제를 옹호한 '남부연합' 장군의 이름을 딴 미군기지 및 군사시설 명칭을 새롭게 부여하는 내용 △국가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통령이 전용할 수 있는 군사건설자금 규모를 제한한 내용 등을 문제 삼았다.
한편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효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하원이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해 재의결할 경우 법안은 트럼프 대통령 의사와 무관하게 즉각 효력을 갖는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우리 군대에 해를 끼치고 안보를 위험하게 만들며 의회의 의지를 훼손하는 무모한 행동"이라며 오는 28일 재의결 추진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