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 코로나 재확산세에 올해·내년 석유 수요 모두 하향
수요 부진에 정제마진 '지지부진'…글로벌 기업 설비 폐쇄 수순
올해 코로나19로 실적 악화를 겪었던 정유업계가 내년에도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재확산세로 글로벌 석유 수요가 내년까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수익성이 나지 않는 정제설비들을 폐쇄하는 등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국내 정유사 역시 당분간 '보릿고개'가 이어질 것으로 우려, '탈석유'를 위한 사업 재편에 고심하는 분위기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2월 보고서(MOMR)를 통해 올해와 내년 석유수요를 모두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각국 전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글로벌 석유 수요의 경우, 하루 평균 8999만배럴을 기록, 전년(9976만배럴) 보다 9.8%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초 OPEC은 코로나 발생 이전인 올해 1월, 석유 수요가 일 평균 1억98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가 시작되면서 소비자 급감하자 다음달인 2월부터 수요 전망 수치를 하향 조정해왔다.
지난 5월엔 9000만배럴 초반선까지 미끄러진 수요 전망은 12월 8999만배럴로 또 다시 조정되면서 올해 들어서만 앞 자리수가 두 번 바뀌었다.
OPEC은 올해 석유 수요 조정에 대해 "올해 3분기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유럽 및 미국 등 OECD 국가들의 수송연료 사용 감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코로나 여파는 유럽, 미국 등 각국 전역에 미치고 있다. 영국은 코로나19 확산세를 잡기 위해 수도 런던 일대의 봉쇄 수준을 최고 단계인 3단계로 높이기로 했다.
독일 정부 역시 16일부터 내달 10일까지 봉쇄 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슈퍼마켓, 약국, 은행 등 필수 업종 상점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네덜란드 역시 봉쇄조치를 높였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국 역시 방역규제 강화에 나서고 있다. 워싱턴주는 실내영업을 제한하고 결혼식 등의 참석인원을 시설 수용인원의 25% 제한하는 방역규제 기한을 이달 14일에서 내년 1월 4일로 3주 연장했다. 헝가리도 부분봉쇄를 내년 1월 11일까지 연장했다.
코로나로 인한 셧다운 조치가 4분기는 물론, 내년까지 이어지면서 석유 수요 흐름도 상반기 내에는 반등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글로벌 주요 에너지기업들은 정유시설을 폐쇄하거나 가동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수익성 방어에 나서고 있다. 미국 마라톤페트롤리엄은 올해 초 정유시설을 2곳 폐쇄했다.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도 내년 호주 정유공장 문을 닫기로 했으며 추가적으로 2곳의 정유시설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일본 최대 정유사 에네오스는 오사카 정유공장을 영구 폐쇄했다. 오사카 공장은 하루평균 11만5000배럴을 생산해온 대규모 정제시설이다.
메이저 석유회사 중 하나인 로열더치쉘 역시 필리핀 바탕가스주에 있는 하루평균 11만배럴 규모의 타방가오 정유시설을 영구 폐쇄한데 이어 미국 루이지애나주 정유시설도 문을 닫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설비 감축으로 공급은 줄었지만 수익성 회복은 아직까지 요원한 상황이다. 최근 정제마진은 '1달러의 벽'을 넘지 못한 채 극심한 정체기를 겪고 있다. 12월 둘째주 싱가포르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0.5달러로 전주 보다 0.1달러 하락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 등 비용을 뺀 가격으로, 통상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현재 수준의 정제마진으로는 팔수록 손해가 생긴다.
OPEC은 코로나 확산세로 내년 석유 수요가 예년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OPEC은 지난 7월 보고서를 통해 내년 석유 수요를 당초 하루 평균 9772만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12월 현재 9589만배럴로 하향 조정했다. 내년 상반기 OECD 국가의 코로나19에 따른 수송연료 수요와 관련 시장 영향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OPEC은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이동제한 조치 부활과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올해 4분기 석유수요가 둔화됐으며 이는 내년 상반기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코로나 백신 접종은 석유 수요 회복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덧붙였다.
수요 부진에 상반기에만 5조원대 영업손실을 낸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역대급 적자에 이어 내년에도 정유 부문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각 정유사들은 석유제품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배터리, 모빌리티 사업 등 '탈석유' 사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성과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이 기간 동안 어떻게 버틸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낮아진 설비 가동률과 높아진 제품 재고를 감안하면 유의미한 마진 개선은 내년 상반기부터 가능할 전망"이라며 "코로나19 국면을 지나면서 정제설비 폐쇄 확대와 신증설 지연 및 취소가 나타나고 있어 공급 측면 환경이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