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번 주중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이 언제,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사과를 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김종인 위원장은 6일 오후 서울 영등포 KNK디지털타워에서 열린 '청년국민의힘' 창당대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힘 처음 올 때부터 예고했던 사항인데 시기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가 됐다"며, 이번 주중으로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한 대국민사과를 결행할 뜻을 내비쳤다.
'왜 하나'…박근혜 탄핵 과오 매듭 필요성 절실
'조국 사태' 와중에도 "탄핵 적절했다" 72.1%
20대 유권자 88.7%, 30대 유권자 88.0% "적절"
탄핵 세력 득세 우려가 '실망 표' 안 오는 원인
당내 영남권 의원 일부에서는 반발도 있지만, 내년 4·7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석권을 위해서는 대국민사과를 하고 '선거 체제'로 돌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날 김 위원장은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가 있느냐"고 일축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3대 전국단위 선거'를 보수정당이 전패한 원인으로는 탄핵 과오를 깨끗하게 매듭짓지 못한 점이 '0순위'로 꼽힌다.
내일신문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9월 26일부터 10월 2일까지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3년 가까이가 경과하고 '조국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해당 시점에도 "탄핵은 적절했다"는 응답이 72.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응답자의 88.7%, 30대 응답자의 88.0%가 "탄핵은 적절했다"고 답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자기의 정치행위를 반성하기보다는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촛불을 들고나왔던 합리적 보수·중도층은 지금 돌아가는 것을 보며 '문재인정권이 더 심각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더라도 '박근혜가 잘했었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현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실망하더라도 자신이 탄핵했던 세력이 다시 득세할까봐 보수정당에 표를 주지 못한다는 분석이 도출된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석권을 노리는 김종인 위원장으로서는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국민의힘으로 오지 않는 표심을 설득할 필요가 있고, 그 방법은 진정성 있는 사과 밖에 없다고 보는 것으로 관측된다.
'언제 하나'…탄핵 의결 4주년인 9일이 유력
정기국회 마지막날, 막내리면 '재보선 정국'
9일 넘기면 자칫 대국민사과 시기 놓칠 수도
김종인 "시기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될 시기"
대국민사과 시점으로는 오는 9일이 가장 유력해보인다. 이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지 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이 탄핵에까지 이르게 된 과오를 사과하는 게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잡혀있어 공수처법 개정안 등을 둘러싼 '입법 전쟁'으로 여론의 주목이 분산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우려해 다른 날을 골라 사과한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상징성이 떨어질 뿐더러, '보여주기'를 의식했다는 지적으로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정기국회가 막을 내린 뒤에는 정국이 급격히 '재보선 국면'으로 전환된다는 점에서 자칫 대국민사과의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다른 상징성이 있는 날을 찾기도 어렵다. 본래 김종인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판결이 확정되면 사과를 하려 했으나, 박 전 대통령 사건은 파기환송과 재상고를 거치며 언제 확정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 파면이 선고된지 4주년이 되는 내년 3월 10일은 4·7 재·보궐선거일과 너무 가깝고, 무엇보다 연내에 사과를 매듭짓지 않는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뜻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와, 어떻게 하나'…아직 결정되지 않은 듯
당 소속 의원 전원 참여는 정치현실상 어려워
지난 8월 5·18 묘역 무릎꿇기처럼 홀로 할 수도
사과 참여 인원 수효는 중요치 않다는 지적도
대국민사과의 주체로는 김종인 위원장이 혼자 하는 방법과 '당 지도부'라 할 수 있는 비상대책위원들이 함께 하는 방법, 그리고 국민의힘 소속 의원 전체가 함께 하는 방법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중 의원들이 다함께 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5선 중진 서병수 의원은 이날 SNS에 "지금은 우파를 적폐로 몰고 독재를 꿈꾸는 좌파 586 세력을 단죄하기 위해 당 내외의 세력을 모으는 일이 우선"이라며 "그런 다음에 저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덮어씌운 모함을 걷어내고 법과 원칙에 따른 재평가를 한 뒤에 공과를 논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노리는 서 의원 입장에서는 탄핵에 부정적인 당심(黨心)에만 의지해도 충분할 수 있다. 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까지 석권을 노리는 김종인 위원장의 입장에서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서 의원 등을 일일이 설득할 시간도 없다. 지난달 16일 김 위원장과 3선 의원 만찬에서도 한 3선 의원이 "오히려 탄핵 동참을 사과해야 한다"고 반발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내에 '반발 세력'이 적지 않아 일일이 설득하다보면 사과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된다. 그리고 일일이 설득하는 게 김 위원장의 정치 스타일도 아니다.
결국 비대위원들과 함께 하든지 아니면 혼자 하게 될 공산이 크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8월 19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역의 추모탑에 헌화한 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15초 가량 묵념했다. 이는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이른바 '바르샤바의 무릎꿇음(Kniefall von Warschau)'과 흡사한 '울림'을 줬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폭망' 직후, 김성태 원내대표가 의원 수십 명과 함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펼침막 아래 무릎을 꿇었지만 결과적으로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사과에 참여자의 수효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