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열고 판공비 셀프 인상 등에 대해 해명
개운치 않은 뒷맛 남긴 채 선수협 회장 '현역 실효성' 강조
판공비 ‘셀프 인상’ 뒤 불투명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대호(38·롯데 자이언츠)가 적극 해명했다.
이대호는 2일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협회 판공비를 6000만원으로 셀프 인상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판공비를 개인 계좌를 통해 현금으로 사용했다는 부분도 공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SBS는 1일 “선수협 회장인 이대호가 자신의 협회 판공비를 기존 30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인상해 사용했으며 개인 계좌로 입금받았다”고 보도했다.
기자회견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이대호는 “당시 선수협회 회장으로 누가 당선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의 이익만을 위해 판공비를 인상한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하며 “2019년 3월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회장 선거에서 내가 아닌 다른 선수가 당선됐다면 그 선수가 회장으로 판공비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협회는 지난 2017년 4월 3일 이호준(현 NC 다이노스 코치) 전 회장이 사퇴한 뒤 2년 동안 공석 상태에 있다가 2019년에야 이대호를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했다.
또 “약 2년 동안 공석이던 회장을 선출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후보로 거론되던 대부분의 선수가 운동에 집중하고자 난색을 보였다”면서 “이에 회장직 선출에 힘을 싣고자 회장 판공비 인상에 대한 의견이 모였다”고 덧붙였다.
판공비 액수가 너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시 이사회 결의 과정에서 좀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며 “그러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법인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판공비를 사용하면서 증빙 서류를 따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 일정 부분 잘못을 인정한 이대호는 “현금 사용 관행이 잘못이라면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대호는 “선수협 회장 자리는 현역 선수가 맡는 것이 맞다. 은퇴 선수들의 경우 현역의 고충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쉬운 자리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물러나면 다음 회장에게 미안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대호 말대로 미안한 일이다. 논란이 불거진 이후 회장직에 오를 ‘현역 선수’는 큰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야구팬들과 언론의 날카로운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판공비라는 예민한 제도와 방식도 슬기롭게 개선해야 한다.
이대호 형 이차호 씨는 이날 오전 SNS를 통해 “현역으로 뛰면서 각종 계약이나 미팅, 보고를 휴식일에 받았다. 이 업무 역시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고 회장직 수행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운동과 회장직을 병행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님을 보여준 글이다. 이번 일이 발생한 원인 중에는 현역으로서 섬세하게 하나하나 챙길 수 없었던 현실적인 환경 탓도 있다.
연봉의 1% 수준인 선수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선수협은 프로야구 선수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기구다. 최고 연봉을 받고 있는 ‘현역’ 이대호는 현역 선수가 선수협회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이런 상황에서 누가 맡을 것이며, 어떻게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역 회장 체제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가운데 선수들의 권익 향상 문제는 당분간 최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