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등 30개 경제단체·업종협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의견' 국회에 건의
사업장에서의 사망·상해 사고 발생시 사업주의 처벌을 크게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는 진보 정치권의 움직임에 경제·산업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30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협회는 19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각각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에 대한 의견을 공동으로 국회에 전달했다.
경제·산업계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제재규정들을 포함하고 있는 과잉규제 입법일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문제 해결을 위한 예방적 대책보다는 사후처벌 위주로 접근해 정책적 효과성도 낮다”면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오히려 적극적·능동적인 안전경영 추진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산업계는 현행 산안법상 처벌규정만 보더라도 선진외국과 비해 매우 높고, 사업주 처벌을 강화한 개정 산안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임범위와 처벌수위를 추가적·기계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경총 등에 따르면 산안법 관련 처벌수위는 영국·싱가포르의 경우 2년 이하 금고, 독일·프랑스·캐나다는 1년 이하 징역, 미국·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인 반면, 한국은 7년 이하 징역으로 월등히 높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모델이 된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 보다도 훨씬 강한 4중 제재규정을 두고 있다. 영국의 법인과실치사법은 신체형에 대한 규정 없이 법인에 대한 벌금형(상한 없는 벌금형)만 규정하고 있는데 반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기업에 대한 벌금 외에 경영자 개인처벌(하한형 징역규정), 영업정지·작업중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4중제재를 부과하고 있다.
과실로 발생한 산재사망에 대해 하한형의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형량수준이 지나치게 높아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경제·산업계의 주장이다. 강은미 의원안의 경우 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벌금, 박주민 의원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을 하한형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산업계는 현행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과 관련된 안전·보건규정이 673개나 있지만 이런 규정들이 업종이나 산업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고 광범위하고 일괄적으로 규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경영책임자와 현장책임자 간 역할과 책임도 정립되지 않고 있어서 현재도 모든 기업들이 사고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잠재적 범죄자 신분에 놓여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제·산업계는 “이런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경영책임자, 개인사업주 및 원청에게 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안전의무를 부과하면서 처벌의 하한선을 2년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하고 있어 기업들의 공포감이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점도 문제다. 강은미 의원안은 유해·위험방지라는 추상적 의무만 규정하고 있고, 박주민 의원안은 산안법상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 규정을 일부 준용하고 있으나 여전히 사업주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제·산업계는 “산업현장에서 준수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규정들이 적지 않아, 사업주가 안전규정을 모두 준수하기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법안 제정 시 사고발생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게 돼, 국내에 진출한 해외의 안전우수 기업조차도 처벌을 면할 수 없고, 관리범위를 벗어난 처벌부담으로 인해 CEO 기피현상까지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도 지적됐다. 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원청 및 하청 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지 않고, 원청에게 하청과 공동으로 유해·위험방지의무 및 사고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는 안전관리의 전문성을 떨어뜨리고 효과도 제한적일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산업계는 또 “대부분의 사고가 복합적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사고원인을 심층적·종합적으로 진단하지 않고, 사고조사 결과도 공개하지 않은 채 사고의 모든 책임을 사업주와 원청에게 일방적으로 지우는 구조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의 사망재해가 발생하는 중소기업은 재무구조나 시설 및 인적한계로 인해 현재의 안전규정 준수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제정될 시 그대로 가혹에 처벌에 노출될 수 밖에 없고, 기업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될 처지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전체 사고사망자(855명)의 94.4%(807명)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서 발생했으며, 이 중 77.2%(660명)가 50인 미만 소기업에서 발생했다.
경제·산업계는 “선진국 등의 사례를 보면 산업안전 대책에 있어서 처벌위주의 방식은 사고예방 효과가 오히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안전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 독일, 일본 등의 산안법상 처벌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낮으나, 국제적으로 비교가능한 사고사망만인율은 우리나라가 2~3배 높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추가적인 처벌강화 입법보다는 선진국과 같이 산업안전정책을 사전예방 중심으로 기조를 전환하는 게 사망사고를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경제·산업계는 “정부가 그간의 중대재해 분석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함께 심층적으로 논의해 사고예방을 위한 종합적인 진단과 처방을 마련하는 것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 제정보다 더 시급한 선결과제”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사업주와 안전관계자, 원청과 하청 간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립하고, 현행 산업안전보건규칙을 업종과 산업현장 특성에 적합하도록 전면 재정비해야 하며, 국가적인 예방시책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게 경제·산업계의 지적이다.
또,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검토 등 산업안전보건행정체계 선진화, ISO 등 국제기준에 기반한 민간컨설팅 강화 등 선진국형 안전보건 인프라를 구축하고, 안전관리에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시설개선 및 인력확충을 위한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제·산업계는 “최근 발의된 산안법 개정안(민주당 장철민 의원 발의)에 대해서는 추후 업계 의견을 수렴한 경영계 의견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