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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그룹 주식 사들이는 국민연금…경영 개입 거세진다


입력 2020.09.01 05:00 수정 2020.08.31 14:40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4대 금융지주 상대 지분율 10% '코 앞'…추가 매입 가능성 왜

'10% 룰' 걸림돌 해제에 영향력 확대 가속…금융권 긴장 증폭

국민연금공단이 국내 4대 금융그룹에 대한 지분율을 10% 목전까지 끌어 올리면서 민간 금융권을 상대로 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뉴시스

국민연금공단이 국내 4대 금융그룹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면서 이들에 대한 지분율을 10% 목전까지 끌어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10% 이상 지분을 확보한 투자자의 무분별한 기업 경영 개입을 막기 위해 마련해 둔 이른바 10%룰 족쇄를 국민연금에 대해서만 풀어준 이후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이에 국민연금이 민간 금융권을 상대로 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지분 매입에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직접적 타깃이 되고 있는 금융그룹들의 긴장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4개 금융지주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평균 9.92%로 집계됐다. 1년 전(9.24%)과 비교하면 0.68%포인트 오른 수치다.


금융지주별로 봐도 흐름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국민연금은 우선 같은 기간 KB금융 지분율을 9.50%에서 9.97%로 0.47%포인트 확대했다. 하나금융에 대한 국민연금 지분율 역시 9.89%에서 9.97%로 높아졌다. 우리금융도 8.18%에서 9.88%로, 신한금융은 9.38%에서 9.86%로 각각 1.70%포인트와 0.48%포인트씩 국민연금 지분율이 상승했다.


금융권에선 국민연금이 이에 그치지 않고 금융그룹 주식을 더 사들일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전까지는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의 지분을 10% 넘게 갖게 되면 현실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기 어려웠지만, 올해 초 금융당국이 10%룰 예외 조항을 통과시키면서 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0%룰이란 특정 기업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된 투자자가 투자 목적을 경영 참여로 전환할 경우 6개월 안에 발생한 단기매매차익을 회사에 반환토록 하는 금융당국의 규제 사항이다. 내부자의 부당한 미공개정보 이용 유인을 차단해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행 중인 제도다.


이 같은 10%룰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 연기금이 여러 기업들의 지분을 상당수 확보하고도 경영에는 직접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만드는 제동 장치로서 작동해 왔다.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려다 자칫 큰 돈을 내야하는 처지가 될 수 있어서였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으로서는 여론의 부담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연금은 10%룰에 발목을 잡힐 뻔한 경험을 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11.7%의 지분을 보유한 대한항공 경영에 관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는데, 이렇게 되면 10%룰에 따라 2016~2018년 간 거둔 489억원의 차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경영 참여 대상에서 최종적으로 제외된 바 있다.


그런데 올해 초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국민연금에겐 이 같은 10%룰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예외 인정안을 의결했다. 즉, 이제부터 국민연금은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단순 투자를 넘어 주주로서의 활동을 벌여도 보유 지분의 매매차익을 반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로써 국민연금은 다수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의 경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그리고 그 첫 대상으로 금융그룹들이 전면에 떠오르는 형국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상장사는 19곳인데, 여기에 4대 금융그룹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그 만큼 국민연금이 금융그룹 지분 확보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얘기다.


이는 가뜩이나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는 금융그룹들에게 신경이 쓰이는 현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금융당국 주도의 금융지원 압박에 직면해 온 금융사들로서는 한층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단지 미운털이 박힐까 우려하며 정책에 동조해 온 수준이었지만, 앞으로는 국민연금을 통로로 정부가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아울러 각 금융그룹 수장들의 입지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최근 불거진 여러 펀드 손실 사태와 이에 따른 대형 금융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의 제재는 이처럼 달라진 환경을 적용해 볼 만한 케이스다. 지난해 펀드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손실을 안기며 논란이 됐던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등의 CEO들은 올해 초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피하지 못했지만, 법적 대응에 나서며 자리를 지켜 왔다. 하지만 이젠 정부가 징계에 그치지 않고 국민연금을 통해 직접 CEO 인선에 목소리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금융지주사들에 대한 지분율을 꾸준히 늘리면서도 이를 9%대 후반까지만 유지해 온 것은 결국 10%룰 때문이었는데, 이제는 걸림돌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라며 "코로나19를 계기로 금융권의 정책적 공조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금융그룹들의 주식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한층 적극적인 경영 관여에 나설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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