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고통 없지만 퇴근 즐거움도 사라져"…일과 생활 분리 안돼 혼란
메신저로 통한 지시 한계, 일부 업무 차질도…정상근무 재개만 손꼽아
"재택근무 끝은 구조조정?"…실적 악화 속 회사와 분리돼 불안감 가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수도권 지역 사무직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에 돌입한지 4주차에 접어들면서 직장인들의 피로와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 현대자동차그룹, SK그룹, 롯데그룹, 한화그룹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부분적, 혹은 전면적으로 재택근무를 실시중이다. 일부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들도 업종이나 업태에 따라 업무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경우 재택근무를 허용하거나 권장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대기업들 중 가장 먼저 재택근무에 돌입한 SK그룹의 경우 이미 재택근무 4주째를 맞았다. 그룹 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사 (주)SK는 이달 말까지로 재택근무 기간을 늘린 상태고, SK이노베이션 등 주요 계열사들은 재택근무 기간이 오는 22일까지였지만, 초·중·고교의 개학 연기에 따라 추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 등 다른 대기업들도 각급 학교 개학 연기 및 코로나19 확산 추이를 봐서 재택근무를 계속해서 연장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재택근무가 한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직장인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직장인들의 경우 초등학교는 물론, 유치원, 어린이집까지 개학과 개원을 연기하는 상황이라 재택근무를 통해 자녀돌봄 고충을 덜 수는 있지만 업무 패턴이 바뀌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대그룹 계열사의 40대 여성 직장인은 “직원들 사이에서 ‘출근의 고통은 없어서 좋지만 퇴근의 기쁨도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면서 “일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으니 혼란이 크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장성한 자녀를 둔 40대 남성 대기업 직원은 빨리 정상 근무가 재개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는 “가장이 계속 출근을 안하고 집에 있으니 가족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가족들이 불편해 하니 업무에 집중하기도 힘들고,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에서 근무하더라도 메신저를 통해 업무 공유가 가능하고 필요할 경우 화상회의도 진행해 업무 차질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비대면 업무 방식의 단점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4대그룹 계열사의 부장급 간부는 “메신저나 유선 통화를 통해 지시와 결제 등을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부족함 없이 주고받을 수 있지만 직접 얼굴을 보며 지시할 때 뉘앙스 차이를 메신저가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면서 “간혹 생각과는 다른 결과물이 (부하직원으로부터)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처와의 만남이 잦은 영업이나 마케팅 분야를 담당하는 경우 고충이 더 크다. 한 대기업 사원은 “거래처와의 스킨십이 업무 성과를 좌우하는데, 직접 만나지 않고 통화만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면서 “거래처에서 내가 관리해야 할 중요 포지션에 있는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 지금 상황에서는 치명적”이라고 하소연했다.
교대로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경우 생활 패턴이 여러 차례 바뀌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은 “사무실 밀집도를 줄이기 위해 조를 짜서 주별로 재택과 출근을 병행하는데, 재택근무와 정상출근이 반복되니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어떤 동료는 재택근무일이더라도 근무시간이 되면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장을 차려입고 머리도 말끔하게 단장한 상태에서 노트북을 켜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회사 실적 악화에 대한 불안감과 언제 정상화가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문제다.
한 대기업 직장인은 “회사 실적은 계속해서 나빠지는데 집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든다”면서 “출근을 한다면 동료들과 회사 상황에 대한 얘기라도 나눌 텐데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불안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실적 악화가 계속되면 연봉 삭감이나 구조조정과 같은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는데 재택근무로 회사 내부 분위기를 파악하기 힘드니 불안감만 가중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운 일부 기업에서는 “재택근무의 끝은 구조조정이 아닌가”란 얘기도 흘러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기업 직장인은 “무엇보다 언제 이 상황이 정상화될지 모른다는 게 가장 힘든 부분”이라며 “재택근무로 코로나19 감염 우려나 마스크 확보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출퇴근 시간을 여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사태가 빨리 종식돼 정상적인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