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계 군소신당, 총선서 가망없다 판단한 듯
한국미래연합 地選 패배 뒤 정치판단 '냉정'
정치 유불리 떠난 우국충정 메시지임을 부각
4·15 총선 42일을 남겨둔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정치권을 강타했다.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스스로가 표현한대로 '기존 거대 야당'에 힘을 싣는 방식으로 현실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보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으로 '옥중정치'라는 비판이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듯, 이와 거리를 두는 표현도 담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4일 오후 유영하 변호사가 전격 공개한 옥중서신에서 "거대 야당의 이합집산은 보수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기존의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 들었던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달라"고 호소했다.
이를 놓고 박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정국의 흐름을 주시한 결과, 이른바 '친박(친박근혜)계 군소 신당'들로서는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옥중서신에서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견제해야할 거대 야당의 무기력한 모습에 울분이 터진다는 목소리도 많았다"면서도 "나의 말 한 마디가 또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 침묵을 택했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이나 그 전신 자유한국당을 비판하려는 말을 한때 하려다 말았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현재 범보수 진영의 최대주주인 미래통합당에 일침을 가하는 방식으로 각을 세우려면, 힘을 실을 '대안 세력'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지리멸렬을 거듭하고 있는 친박계 군소 신당들은 총선이 42일 남은 이날까지 제대로 된 총선 준비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될 세력'에 잘못 힘을 실었다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기라도 하면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까지 잃으면서 현실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할 우려가 있다.
옛 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통합당 중진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굉장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정치인"이라며 "탄핵과 구속 이후 박 전 대통령의 현실정치와 선거에서의 영향력은 '긁지 않은 복권'과 같은 상황인데,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꽝'으로 드러나는 게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현실정치 입문 초창기였던 지난 2002년 이회창 총재의 독주에 반발해 한나라당을 탈당,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미래연합이라는 신당을 창당했다. 지방선거를 발판으로 그해 대선을 겨냥했던 박 전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대구와 경북에서 각각 광역의원이 1명씩밖에 당선되지 않는 괴멸적 패배를 당하자, 그해 말 당을 해체하고 한나라당에 복당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철저히 정치현실을 냉정히 목도하는 행보를 걸어왔다는 지적이다.
'기존 거대 야당' 통합당에 박 전 대통령이 힘을 실으면, 향후 성과에 박 전 대통령의 '기여분'이 어느 정도인지 뚜렷하게 산출하기는 어렵다. 통합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총선 승리의 한 요소'로 평가받을 수 있다. 총선 이후 대선 전에는 박 전 대통령이 사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면,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보수정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한 마디 하는 방식 등으로 현실정치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의 정서에서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현실정치 영향력 유지를 목적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다고 여겨지면 당장 역풍을 맞는다.
대구·경북 권역의 통합당 의원은 "TK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정서는 이제 그만 풀려났으면 좋겠다는 연민의 정서일 뿐, 다시 정치를 좌우했으면 좋겠다는 복권의 여론이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의 서신에 현실정치와 선을 긋는 여러 '장치'가 담겨있는 것을 보고, 정무감각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옥중서신에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테러를 당한 이후 나의 삶은 덤으로 사는 것"이라며 "탄핵과 구속으로 나의 정치여정은 멈췄다"고 했다. 더 이상 현실정치 전면에 나설 뜻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중도층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많은 분들이 무능하고 위선적이며 독선적인 현 집권 세력으로 인해 살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호소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나라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라고 했다. 자신의 옥중서신이 어떤 정치적인 유불리를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나라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민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최근의 코로나19 확산 위기와 관련해 "확진자가 수천 명이나 되고 30여 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특히 대구·경북에서 4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앞으로 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라고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