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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금감원의 내로남불 적폐사냥


입력 2018.10.29 06:00 수정 2018.10.29 16:28        부광우 기자

보험사들 향한 윤석헌 원장 선전포고에 구악 찾기 경쟁 분주

호랑이 곶감 전락한 금감원…본인부터 거울 앞 서봐야 할 때

적폐라는 유령이 금융감독원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요즘 금감원 직원들은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소위 보험업계의 구악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보험사들을 상대로 한 금감원의 적폐 사냥이 시작된 셈이다.ⓒ씨씨제로포토

적폐라는 '유령'이 금융감독원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요즘 금감원 직원들은 저마다 눈에 불을 켜고 소위 보험업계의 구악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 보험사들을 상대로 한 금감원의 적폐 사냥이 시작된 셈이다.

단초는 윤석헌 금감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보험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찾아 그에 대한 혁신안을 내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다. 윤 원장은 지난 달 이른바 보험산업 감독혁신 태스크포스를 출범시키면서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보험업계의 신뢰가 높지 않다.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 소비자 시각에서 근본적인 원인과 개선점을 고찰해야 할 시점"이라고 날을 세우면서 연말까지 대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윤 원장의 경고는 보험사들을 향하고 있지만 분주한 움직임이 감지된 쪽은 오히려 금감원이다. 이를 두고 금감원 내부에서 적폐 찾기 실적 경쟁이라도 벌어진 모양새다. "보험업계 적폐 아이디어를 찾아 윗선에 보고하는 일이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됐다." 금감원 보험 관련 부서 관계자가 최근의 사정을 전하며 뱉은 말에는 뼈가 담겨 있다.

적폐란 오랫동안 쌓여 온 관행이나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어떤 일을 구상하거나 고안할 때 쓰이는 관용어다. 그런 두 단어를 붙여서 쓰는 금감원 관계자의 표현은 참으로 언중유골이다. 찾지 못하면 만들어서라도 적폐를 내보일 각오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이 있냐는 조롱은 근래 보험사들에게 남 얘기가 아니다.

금감원의 이런 행보는 한 편에서 권선징악의 화신 같아 보인다. 흩어져 있는 개미들인 소비자들을 대신해 대기업들을 혼쭐내는 모습은 박수를 받기 좋은 그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대신해 부자들을 징벌하는 의적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존재다.

하지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보면 과유불급인 측면도 없지 않다. 금융사가 필드 위의 선수라면 금감원은 휘슬을 쥔 심판이다. 금융시장에 뿌리 깊게 박힌 악습을 뽑아내는 작업은 금감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의무를 행하면서 공치사를 바라면 비아냥을 듣기 쉽다.

더구나 금감원 자신도 적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금감원에서는 정의의 사도인 냥 금융사들을 다그치던 고위 인사들이 나이가 차면 슬그머니 금융사로 자리를 옮기는 행태는 묵시적 관행이 된지 오래다. 금감원과 금융사 가운데 누가 똥 뭍은 개고 누가 겨 뭍은 개인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불편한 진실을 접한 관객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맥이 빠지는 대목이다.

아울러 최근 채용 비리와 부당한 대출 금리 등 금융권의 수많은 폐해가 불거지면서 금감원의 신세는 더욱 궁색해졌다. 선수들에게 속았는지, 알고도 묵인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에도 심판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현실이다. 언뜻 생각하면 금감원의 편에 설 것 같은 시민사회에서조차 금융사의 병폐를 나무라기 전에 내부의 적폐부터 청산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는 의미심장하다.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데일리안

금융사들에게 금감원은 호랑이 곶감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금감원은 스스로를 금융시장의 파수꾼이라며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나 정작 가장 많이 몸을 부대끼는 금융사들에서는 존경심을 잃었다는 말만 떠돈다. 제 허물은 그대로 두면서 처벌을 위한 처벌에만 열을 올린다는 수군거림이 섞여 있다.

중국 고전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하나인 유비는 남에게 몸을 의탁하며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던 도중 화장실에서 살이 오른 자신의 넓적다리를 보고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예전엔 언제나 몸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룬 일도 없이 살이 붙었다며 슬퍼했다는 비육지탄의 고사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기 전 한번쯤 거울 앞에 서봐야 할 때다. 시나브로 살이 찐 곳은 없는지 둘러봐야 한다. 금감원의 혁신안에 제일 먼저 포함돼야 할 대상은 어쩌면 금감원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런 분골쇄신의 각오가 행동으로 옮겨질 때 금감원이 금융사들에게 휘두르는 칼날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로워지리라 믿는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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