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오·이쿼녹스…'완성차 업체가 파는 수입차' 러시
르노삼성·한국지엠 올해 실적 책임질 막중한 위치
가격·물량 적시공급 한계…일반 수입차 대비 가격·서비스 이점
르노삼성·한국지엠 올해 실적 책임질 막중한 위치
가격·물량 적시공급 한계…일반 수입차 대비 가격·서비스 이점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자동차 등 외국계 완성차 업체들이 해외 본사로부터 자동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에는 기존 라인업을 보강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수입차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내달 7일 개막하는 부산모터쇼에서 중형 SUV 쉐보레 이쿼녹스를 공개한 후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쿼녹스는 GM(제너럴모터스) 미국 본사에서 생산하는 차종으로, 한국지엠이 수입해 판매하고 A/S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앞서 르노삼성은 지난 14일부터 소형 해치백 클리오 판매를 시작했다. 이 차종 역시 르노삼성의 모기업인 르노 유럽공장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심지어 브랜드와 엠블럼도 르노삼성이 아닌 르노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비싼 국산차? A/S 좋은 수입차?
사실 그동안 이들 두 회사가 모기업으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는 차종은 여럿 있었다. 한국지엠은 대형 세단 임팔라가 대표적이고, 대중차는 아니지만 스포츠카 카마로와 전기차 볼트 등도 GM 본사로부터 수입해 판매하는 차종들이다. 르노삼성은 소형 SUV QM3와 전기차 트위지 등을 르노로부터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들여오는 이쿼녹스와 클리오는 기존 차종들과 의미가 다르다.
한국지엠은 올해 2월 군산공장 폐쇄 이후 법정관리 위기, 철수설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4월까지 3개월 연속 내수판매가 반토막 난 상황에서 스파크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 외에는 자체 생산하는 신차 출시계획도 없어 이쿼녹스에 판매실적 견인을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다.
르노삼성은 경쟁사인 한국지엠이 주춤한 상황에서도 신차의 부재로 반사효과를 누리지 못한 채 올 들어 4월까지 계속해서 20%대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다. 그만큼 올해 출시되는 유일한 신차인 클리오가 큰 역할을 해줘야 한다.
이처럼 두 수입 차종들에 거는 기대가 크지만, 이들이 가진 공통적인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생산하는 차를 수입해 팔다 보니 국내에서 생산하는 완성차보다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르노 클리오의 경우 기본모델인 ‘젠(ZEN)’트림 가격을 2000만원 미만(1990만원)으로 맞췄지만 국산 소형 해치백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현대차는 클리오 출시 시점에 소형차 엑센트 2018년형을 내놓으면서 1159만원짜리 트림을 추가하기도 했다. 물론 클리오와 같은 조건인 엑센트 해치백 디젤 모델은 시작가격이 1760만원까지 올라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2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르노삼성은 기존 소형차들과 차별화하고 고급감을 강조하기 위해 고급 사양을 대거 기본 장착한 클리오 ‘인텐스(INTENS)’ 트림도 내놓았지만 가격은 2320만원으로 웬만한 준중형차보다 비싸다.
한국지엠이 출시 예정인 이쿼녹스는 아직 가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클리오와 마찬가지로 가격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쿼녹스의 미국 판매가격은 최저 2만5695달러(약 2880만원)에서 최고 3만4595달러(약 3750만원) 수준이다. 국산 중형 SUV 싼타페(2815만~3945만원)와 가격은 큰 차이가 없지만 차체 크기와 배기량을 감안하면 싼타페 수준의 가격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쿼녹스의 차체 크기는 준중형 SUV인 투싼과 중형 싼타페의 중간 정도다. 특히 지난 2월 싼타페가 풀체인지(완전변경)와 함께 덩치를 키우면서 이쿼녹스와의 격차를 더 늘렸다.
국내 소비자들이 이쿼녹스를 투싼과 같은 차급으로 인식한다면 한국지엠이 마진을 포기하고 이쿼녹스의 가격을 3000만원 전후로 맞춰도 비싸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쿼녹스와 클리오를 국산차가 아닌 수입차의 범주에 놓고 볼 수 있도록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여러 가지 상대적 이점을 어필할 수 있다.
르노 클리오와 같은 프랑스 브랜드의 소형 해치백인 시트로엥 DS4는 기본트림 가격이 2890만원에 달한다. 유럽에서 이들과 경쟁하는 폭스바겐 폴로의 국내 판매가격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과 비교하면 클리오는 1000만원가까이 가격경쟁력을 지닌다.
게다가 클리오는 수입차 업체의 단점인 ‘A/S지옥’에서 자유롭다. 완성차 업체인 르노삼성의 서비스망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노삼성이 클리오에 르노 엠블럼을 달고 르노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르노삼성의 판매, 서비스 네트워크를 똑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이같은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쿼녹스 역시 클리오와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이쿼녹스와 같은 미국산 수입 SUV인 포드 쿠가는 국내 시장에서 3990만~4540만원에 판매된다. 이쿼녹스는 쿠가보다 큰 덩치와 넓은 실내공간을 제공하면서도 가격은 훨씬 낮출 수 있다.
한국지엠의 서비스 네트워크가 포드코리아보다 월등하다는 점도 이쿼녹스가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지엠은 이미 GM 본사와 동일한 쉐보레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별도의 브랜드 마케팅에 힘쓸 필요는 없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데...
물론 가격 외에도 수입차로서의 단점은 또 존재한다. 바로 ‘물 들어올 때 노 젓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점이다.
통상 국내 생산 차종은 신차가 출시돼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최대한 생산량을 늘려 신차효과를 극대화한다. 하지만 수입차는 이게 안 된다. 초기수요 예측 자체가 힘든데다, 차량을 공급하는 본사의 수급 상황에 따라 충분한 물량 공급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지엠이 2015년 들여온 대형 세단 임팔라가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 초기 물량 공급이 충분치 않아 신차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르노삼성 역시 QM3의 수입 판매를 시작하던 2013년 말 물량 부족으로 수요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유럽 공장의 사정으로 국내 판매에 차질을 빚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몇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지엠과 르노삼성과 같이 해외 자동차 브랜드의 글로벌 생산기지 중 한 곳으로 운영되는 완성차 업체는 일부 차종의 수입 판매가 불가피하다. 한국의 생산·판매 상황만 놓고 볼 게 아니라 본사 전체 운영체계의 일환으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닛산 로그를 생산하지만 국내에는 판매하지 않고 전량 미국으로 수출한다. 차라리 로그 생산라인에 국내 판매용 QM3와 클리오를 투입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전체를 놓고 보면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현행 생산체제가 효율적이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FTA 등으로 시장이 개방되면서 국내 판매 차량은 무조건 국내에서 생산하는 게 유리하다는 법칙도 깨지고 있다”면서 “외국계 완성차 업체들은 모기업의 여러 공장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만큼 저비용 고효율화로 생산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국내 공장은 물량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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