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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K스포츠재단 출연도 뇌물죄?...특검의 고무줄 잣대


입력 2017.08.17 06:00 수정 2017.08.17 05:55        이배운 기자

<이재용 운명은④>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기업 출연...수동적 참여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 대한 1심 재판이 5개월간의 열띤 공방을 끝내고 오는 25일 재판부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초사옥 전경.ⓒ데일리안
<이재용 운명은④>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기업 출연...수동적 참여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모든 수사의 시나리오를 무리하게 경영권 승계로 끼워 맞추는 탓에 정상적인 기업 활동조차도 뇌물 혐의로 밀어 붙이는 등 말도 안 되게 꼬투리를 잡고 있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들의 출연이 삼성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특검의 주장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가 반박하며 내뱉은 말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입증할만한 증언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무리하게 밀어부치다보니 논리가 공허해졌다는 지적이다.

17일 법조계 안팎에서는 오는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1심 판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삼성의 주도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이루어 졌다는 특검의 주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같은 비판에는 정부가 재단에 대한 출연을 요청할때 기업의 입장을 '을'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당시 삼성은 현대자동차·SK·LG 등 다른 기업들과 함께 한 것으로 금액도 기업 규모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배분한대로 따르는 등 수동적으로 참여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은 삼성과 각 대기업 주요 그룹 계열사를 비롯해 총 53개에 달한다.

삼성이 총 204억원으로 현대자동차그룹(128억원)·SK(111억원)·LG(78억원)·포스코(49억원)·롯데(45억원)·GS(42억원)·한화(25억원) 등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많은 출연금을 냈지만 이는 기업의 매출 및 자산규모, 시가총액 등에 비례해서 정해진 것이다.

전경련이 각 기업들에 출연을 요청해 진행하는 것은 이전의 모든 정권에서도 있어왔고 불우이웃돕기 등 사회공헌 활동에서도 이같은 절차대로 이뤄져와 특정기업이 주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재단 출연이 전경련 주도로 이뤄졌고 공익적 취지로 절차에 따라 진행됐다고 삼성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는 이유다. 특히 전경련을 통해 청와대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전달받은 데다 다른 기업들도 참여하는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이를 거절하기는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검은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건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정부의 도움을 대가로 바라고 미래전략실을 통해 삼성물산의 미르재단 출연금 지원을 일방적으로 지시했다는 것이다.

특검은 SK와 롯데그룹에 대해서도 출연 관련 수사를 진행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면서 이 부회장의 재판은 출연금 자체가 아닌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한 청탁이라는 동기 여부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특검이 결심공판까지 뇌물죄 혐의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경영권 승계 작업이라는 틀에 끼워 넣으려는 ‘끼워맞추기식 수사'를 벌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매 정권마다 정부의 요청에 의해 기업의 재단 출염이 있어왔다는 사실은 이러한 특검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들로부터 2659억원을 모아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했고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는 삼성을 포함한 87개 기업이 7184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공익재단 설립을 주도하면서 기업들이 940억원을 모금했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기금으로 삼성과 현대차 등 5대 그룹이 215억원을 출연한 사실이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인 국민의 정부는 대북비료 보내기 사업 100억원, 아태재단(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설립 213억원, 사랑의친구 90억원 등을 기업으로부터 모금했다.

특검의 논리대로라면 이들 기업이 모두 뇌물죄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하며 대가관계에 따라 전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혐의 적용에 따른 조사가 진행돼야만 한다.

삼성이 정부의 재단출연 요구에 반 강제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명약관화하다. 정부가 기업의 각종 사업과 인허가 추진에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어 기업은 정부에 대해 가능한 낮은 자세로 협조할 수 밖에 없는 '을'의 처지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말 국회 청문회에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국내 경영 환경에서는 기업이 정부의 뜻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다”고 밝힌 것도 국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의 현실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과거 대우그룹과 국제그룹 해체 사례처럼 권력이 기업경영의 본질 자체에 개입하는 것은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정부가 세무조사 강도를 높이거나 엄격한 규제 잣대를 들이밀면 실제로 기업에는 강한 압박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력을 동원하는 행태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앓고 있는 문제”라며 “정권에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다는 생각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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