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사드 추가배치‘ 지시 웬일인가 했더니
<칼럼>'임시배치'라는 모호성 유지 배치 효과 떨어뜨려
수단 없는 독자적 제재에다 아직도 대화 문 열려있다니
또 모호화법이다. 북한이 28일 밤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한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즉각 협의할 것’을 지시했다. 29일 새벽 1시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소집한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긴급히 요청하고 강력한 무력시위를 주문하는 등 단호한 북 미사일 대응의지를 보였다.
역시 대통령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구나 했는데 이어지는 말이 그게 아니었다. ‘임시 배치’란다. 사드가 가장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라 여겼기 때문에 ‘추가 배치’를 지시했을 터이다. 그랬으면서도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포기할 수도 있다고 한다. 어느 쪽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말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해 안 되는 점은 그 뿐이 아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미국을, 배치하라면 배치하고 철수하라면 철수하는 순둥이로 여겼다는 것인가.
미국은 말 잘 듣는 순둥이인가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북한이 미사일을 쏘았을 때도 유사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5일 무력시위를 지시하고 강력 대응 의지를 거듭 강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독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북화해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쾨르버 재단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등 5대 대북 정책 방향을 ‘베를린 구상’이란 이름으로 밝힌 것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호화법이 구사되었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NSC 전체회의에서 당부했다. 지난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과 관련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호히 대응하되,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라.”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화를 내는 시늉만하고 금방 달래기 모드로 돌아가겠다는 뜻으로 들리기 십상이다. 북한의 당국자들은 아마도 그렇게 들었을 듯하다. 아예 귓등으로도 안 들었을 개연성이 더 커 보이지만 ….
대통령의 말이 일관성을 잃으면 외교·안보상 심각한 후유증이 빚어진다. 북한의 대남무시태도가 더해질 게 뻔하다. 미국의 우리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중국으로서는 대한(對韓) 압박 강화의 빌미를 얻게 된다. 이미 중국은 사드 추가배치에 대해 ‘엄중 우려’ 운운하면서 철폐를 요구하고 나섰다. 우리가 머뭇거릴수록 중국의 으름장이 도를 더하리라는 것은 상식적 예상이다.
‘레드라인’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어놓은 금지선이 아니다. 미국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핵장착 ICBM의 실전배치 직전 상황을 미국이 그렇게 상정한 것이다. 미국은 본토가 직접 공격받는 상황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강성 보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정부만의 안보정책이 아니라 미국정부와 미국인의 일관된, 그리고 바뀔 수 없는 인식이고 의지다.
북한의 자국에 대한 핵공격의 가능성이 가시화될 때 미국은 군사적 대응에 나서기 쉽다. 한국 정부의 입장, 한국인의 처지 같은 것은 결정적 고려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미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어버렸다는 판단이 설 경우 미국은 한미 군사동맹보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더 관심을 기울일지도 모른다. 북한이 노리는 바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이미 오래전에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다만 한미동맹체제 때문에 저들이 욕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곧 장거리 핵미사일과 핵탄두 실전배치가 가능해 지면 그 때는 한반도에서 미국을 밀어내고 한국을 복속시킬 수 있다고, 김정은이 믿는다 해서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상황에도 ‘베를린 구상’ 강조
문 대통령이 ‘독자적 대북 제재’를 말했다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 정부에는 독자적으로 무력행사를 할 여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경제적 제재를 염두에 둔 말이었을까?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할 짓 다하는 북한이다. 게다가 우리와 거래가 거의 없는 상대를 경제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무엇일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북한 김정은 집단에 있어서 ‘인질’ 이상의 의미를 못 갖는다. 이용가치도 그리 크지 않다. 우리 측의 거액 달러지원이 북한정권의 연명을 도왔다고 하지만, 아마 우리가 지원하지 않았더라도 북한 정권은 유지됐을 것이다. 북한 인구가 2500만 명에 이른다. 백성은 굶어죽어도 왕실과 지배계층은 온갖 호사를 다 누렸던 옛 왕조시대를 생각하면 김씨 왕조의 생존력은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우리의 달러를 마다하기야 하겠는가. 불로소득으로 자신과 측근들을 치장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아무리 달러가 좋다고 해도 체제의 안전과 바꾸려할 리는 없다. 그게 북한 사이비 유사 신정체제의 속성이다.
대화야말로 한반도 문제 해결의 궁극적 해법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북한이 우리로부터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한 대화 제의는 무의미하다. 실제로 우리는 북한 측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 중국 등 주변 열강들이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우리가 북한에 약속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얼마 되지 않는 부(富)를 나눠주는 것 외에는!
그래도 대화를 하는 동안은 안전할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에서인가? 그간의 경험으로 보면 대화는 임시방편조차도 못 되었다. 대화에 관한한 우리는 한 번도 주도권을 행사해본 적이 없다. 북한이 응하면 열리고 돌아서면 막히는 게 남북대화였다. 매양 그렇게 당하면서도 대화를 구걸하듯 해 온 것은 통일의 물꼬를 튼 정부로 기록되고 싶다는 욕심, 대화의 진전이 우리 내부의 정치적 지지율을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1조 6000억 원이나 투입된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공사를 말 한 마디로 중단시킬 수 있는 게 대통령의 힘이다.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의지의 표명만으로 목표치보다 더 높은 인상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위력의 소재도 다르지 않다. 가뭄이 한창일 때 4대강 보에 모아둔 물을 흘려보내게 하고, 국가 간의 합의로 진행 중이던 사드 배치를 당장 멈추도록 한 힘 또한 대통령의 것이다. 그런 권력으로도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문 대통령은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을까?
동맹 공고화 외의 대안은 없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문 대통령의 사드 관련 지시는 부담을 더 키워 놨다. ‘임시 배치’라고 말함으로써 지속적인 압박의 지렛대를 쥐어 준 셈이 된 것이다. 안보와 관련해서 줄다리기 외교는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 우리가 통일된 국가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곡예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핵무장을 공인받으려는 집단과 제1선에서 대치하고 있음에도 상황을 변화시킬 역량은 갖지 못한 아주 고달픈 처지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할 뿐 우리의 안보는 안중에 두지도 않는다. 그런 중국을 미국과 등거리에 두면서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세계 유수의 경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계속 영향력 있는 정치리더로 중히 여겨질 수 있는 길은 현실적으로 ‘한미군사동맹 체제의 공고화 하나 뿐이다. 북한 핵문제는 우리가 나서서 대화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에 평화기반은 구축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장이 국제적으로 공인될 경우 대한민국의 자주와 독립은 역사 저편으로 밀려나고 만다. 강약이 부동이라고 했다. 우리의 군사적 역량을 솔직히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허장성세(虛張聲勢)로 겁먹을 상대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후보가 아니라 바로 국가원수이고 군통수권자이며 최고행정책임자이다. 당연히 국가 보위를 최우선적 가치로 지켜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공상적 평화주의로는 북한 김정은의 기세만 부추겨 놓는다. 재주넘기식의 외교는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교묘히 표정을 꾸민다 해도 그 의도는 곧 간파되고 만다.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한다고 역대 진보정권은 공언했다. 그런 기개를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라고 못 보일 까닭이 있겠는가. 정부가 국가안보 문제를 두고 모험을 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폐쇄적 민족주의에 발목 잡혀 인류공영의 대의를 저 버리지 말기를 소망한다. 한 마디로 문 대통령의 안보 관련 발언이 단호하면서 일관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무엇보다 이점을 기억하시라. 북한엔 김정은 집단도 있지만 그들의 폭정·학정에 시달리는 우리의 혈육 2500만 명도 있다는 것을!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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