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원내대표의 뜨거운 눈물도 ‘빙산’을 녹일 수는 없다
[칼럼]추경안 갈등은 이념적 대결의 연장선상
보수야당, 우파 대리인으로 좌파정책 견제해야
[데스크칼럼] 추경안 갈등은 이념적 대결의 연장선상
보수야당, 우파 대리인으로서 좌파정책 견제 잘해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2일 눈물을 훔친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정치인들이 고성과 막말로 언론에 오르내린 적은 더러 있어도 눈물의 경우는 드물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자유한국당의 추경안 반대로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야 합의문 채택이 불발되자 "제가 정말 한 달 동안…"이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져 손으로 눈가를 훔친 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화하고, 정말 발품 팔면서 했는데 을도 이런 을이 없다"며 울분(?)을 토해냈다.
우 원내대표가 목을 매는 11조 2천억원 일자리 추경안에는 공무원 1만2천명 추가채용을 위한 80억원이 포함돼 있다. 이것이 여야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정부와 여당은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대선공약 81만개)를 만들어 소득이 늘면 소비와 투자가 연쇄적으로 늘어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반면에 야당은 공무원을 채용하면 평생고용 보장에 따라 국가 재정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준다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이번 논란은 일자리 만들기와 관련해 정부의 역할이 어디까지이며 어디서부터는 시장에 맡겨야 하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정부 영역과 시장 영역 간 경계설정의 문제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스미스가 1776년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거론했을 때는 시장이 만능이었고 정부는 거의 설 자리가 없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공공사업을 벌여 뉴딜 정책을 펼 때는 정부의 역할이 정점에 달했다. 이후 80년대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부상할 때는 ‘작은 정부’가 대세였고, 2008년 월가의 탐욕으로 금융위기가 발발한 뒤에는 다시 정부의 역할이 주목받는 등 반전(反轉)이 계속됐다.
이번 추경안을 둘러싼 갈등은 좌파와 우파 간의 오랜 이념적 대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정부’을 지지하는 좌파진영에선 공무원 증원을 통해서라도 일자리를 만드는 게 정부의 소임이라고 보지만,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우파로선 시장에 맡겨야할 일이다. 선악의 문제는 아니고 선택의 문제다. 1·2차 세계대전 중간에는 ‘큰 정부’가 적절했고, 스태그플레이션을 거친 80년대에는 ‘작은 정부’가 시대적 요청이었다. 이 시대에 맞는 일자리 처방은 무엇인가?
공공의 마중물 역할, 공공기관 지방이전 사업에서 전례
정부는 일자리 추경안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공에서 만든 일자리가 민간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자극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공공의 마중물’ 역할은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토균형발전을 기치로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할 때도 마중물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수도권으로 몰리는 인구 분산을 위해 민간을 강제로 지방이전할 수 없으니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공공기관을 앞세운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154개 공공기관이 전국 10개 혁신도시로 이전작업을 진행 중이다.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공공부문이 민간부문의 지방이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가? 공공기관 직원들부터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서 정착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 작년말 기준으로 전체의 31%만 가족을 데리고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의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을 유치하기 위한 ‘산학연 클러스터’ 부지 분양률은 57%에 그치고 있다. 아직은 혁신도시가 지방을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동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혁신도시 공공기관, 지역사회와 융화할 수 있도록 토착화 방안 강구해야
시간이 흐르면 정책 성과는 좀더 목표치에 근접할 것이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하고 또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지는 별개의 문제다. 상당수 공공기관은 지역사회에서 ‘물 위의 기름’처럼 이질적인 집단으로 남아 지역민들과 제대로 융화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고착화할 경우 경제적인 파급효과도 기대치 이하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지시한 ‘지역인재 30% 이상 채용’ 등 공공기관 토착화를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도 민간부문의 일자리 창출로 파급되지 못하고 그 효과가 내부에 그칠 수 있다. 공무원 수만 늘어나고 집안잔치로 끝나는 셈이다. 업무량과 상관없이 공무원 수가 늘어나는 ‘파킨슨 법칙’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공무원 증원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 전문가들은 뉴딜정책처럼 SOC 사업을 통해 단기적으로 소득과 수요를 늘리는 정책은 가능하지만, 평생 고용해야 하는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복지·안전 분야 공무원에 대한 신규 수요는 일감이 줄어든 기존 공무원을 재배치해 충당함으로써 재정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추경안에 반대하는 야당의 목소리도 같은 기조일 것이다.
공공부문 덩치 키우기도 문제지만 공공부문 비효율성 방치 움직임도 우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의 덩치를 키우겠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기존 조직의 비효율성을 방치하고 묵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몰고 있는 것도 우려된다. 공공기관 성과연봉제가 폐지 수순을 밟고 있고 그에 덩달아 이미 시행 중인 교원 성과급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나친 경쟁’이 초래하는 폐단과 부작용에 대해선 대책을 세워야겠지만, 그것이 ‘공정경쟁’과 ‘성과평가’, ‘차등보상’의 필요성을 상쇄할 수는 없다. 시장의 독점적 지위와 고용 보장에 안주하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과 저조한 생산성은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현 정부는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해 그에 맞는 보수를 지급하는 ‘직무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기세등등한 민노총으로부터 ‘채무 변제’ 요구에 시달리는 현 정부가 과연 직무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노사 합의를 이끌어낼지 두고 볼 일이다.
우 원내대표는 야당이 추경안에 협조해주길 감성적 수단까지 동원해 호소했다. 그러나 공무원 증원 문제는 정부의 역할을 놓고 지난 수세기에 걸쳐 ‘밀당’을 벌여온 이념대결의 끝선에 있다. 보수 야당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지지하는 우파 진영의 대리인으로서 좌파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예상되는 부작용, 해외 실패 사례 등을 확실히 짚어주고 견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야할 것이다. 그간 보수진영에서 혼외자 취급을 받아온 국회선진화법도 요즘은 효자 노릇을 한다. 집권 여당 원내대표의 뜨거운 눈물도 얼음장 위에 눈물자국은 남길 수 있을지 모르나 거대한 빙산을 녹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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