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무역질서, '대비'하되 '혼란'은 없어야
"공화당 내 지지기반 약해…막상 당선되면 강경정책 펼치기 힘들 것"
"미-중 무역분쟁, NAFTA 재협상 등 간접 영향 대비해야"
로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이 21일 새벽(한국시간)으로 임박하며 그의 당선 이후부터 줄곧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언급되던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강경한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운 트럼프가 초강대국 미국의 지휘권을 잡으면서 세계 무역질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이를 예의주시하되 지레 겁먹고 혼란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기업들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건 한미 FTA 재협상 등 한국을 타깃으로 한 직접적인 정책 변화가 아닌 미-중 무역분쟁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 따른 간접적인 영향이다.
매튜 굿맨 미국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난 18일 서울 세종로 상의회관에서 대한상의 주최로 열린 ‘트럼프 시대, 한국경제의 진로 세미나’에서 그는 “한미 FTA는 미국 선거기간 동안 트럼프 당선자의 타깃이 됐던 게 사실이지만 재협상으로 가기에는 NAFTA 등에 비해 정책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대신 미-중 무역분쟁으로 중국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거나 양국간 공급체인이 손상되면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따고 전망했다.
실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내정자는 지난 18일(현지시간)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에 대한 무역보복 계획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였다. 그는 중국을 ‘최대 보호무역국가’로 정의하며 철강, 알루미늄 덤핑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고 언급했다.
중국 역시 미국 보잉의 항공기 수입 취소와 미국산 자동차·기계장비·첨단부품 수입 제한 등으로 맞대응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양국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관세 인상 등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면 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보복 품목으로 미국이 거론하는 철강·자동차 부품 중국이 거론하는 완성차는 우리의 주력 수출품이기도 하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줄곧 중국을 ‘환율 조작국’이라고 비난하며 최대 45% 관세를 매기겠다던 엄포를 현실화할 지도 관심사다. 굿맨 수석연구원은 한국 역시 환율 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으며, 그 경우 한국에도 비슷한 조치가 내려질 수 있다.
NAFTA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의지도 실행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그동안 “미국에서 멕시코로 공장을 옮긴 기업에는 3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로스 내정자도 청문회에서 “NAFTA부터 손보겠다”고 언급하며 트럼프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는 NAFTA 체제 하에서 멕시코산 제품의 미국 무관세 수출 효과를 기대하고 멕시코에 공장을 지은 기업들에게는 큰 타격일 수 있다.
당장 기아차는 지난해 5월 연산 40만대 규모의 멕시코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여기서 생산되는 물량의 80%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었으나, NAFTA가 재검토된다면 생산물량 소화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는 기아차 외에 포스코·현대제철·한화첨단소재·SKC 등 멕시코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 모두에게 위협이 된다.
반면,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위협 요인이 너무 과장돼 왔다며 필요 이상으로 위축돼 스스로 혼란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과거보다 악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액션이 없는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위축될 필요는 없다”면서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는 악재까지 우려하다 보면 오히려 트럼프 리스크를 더욱 증폭시키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취임 이후에도 후보 시절의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는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긴 했지만, 아직 공화당의 완전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고, 미국 정계에 영향력이 큰 금융권에서도 트럼프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 “막상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이들을 무시하고 강경한 정책을 펼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