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박차고 나간 김무성…비박, 차라리 분당?
'최순실 파문'으로 새누리당이 완전히 길을 잃은 모양새다. 의원들로부터 퇴진 요구를 받는 지도부는 동력을 잃은지 오래고 추락한 당 지지율은 쫓아오는 국민의당을 의식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김무성 전 대표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서는 모습은 지난해 '유승민 사퇴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당이 직면한 갈등 양상은 그 때보다 더 심각하다.
2일 오전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간담회에선 지난 전당대회에서 맞붙었던 이정현 대표와 정병국 의원 간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졌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며 "그동안 (이 대표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떻게 했는지 거론하고 싶지 않다"며 "하지만 이게 여론이고 사태 수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국민 소리 당원소리 수렴해주실 부탁한다"고 사퇴를 종용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발끈했다. 그는 "그렇게 말 하면 내가 무슨 도둑질이나 해먹은 것처럼, 누구랑 연관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게 과거에 뭐가 있는 게 맞지 않느냐는 발언은 공식 석상에서 적절치 않다고 본다”며 “기왕 이야기 나온 거니까 구체적으로 이정현이 뭘 어떻게 했는가를 얘기하라"고 쏘아붙였다.
이후 정 의원이 발언을 자제하겠다고 했지만 흥분된 이 대표의 속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대표는 "자제하지 마시라니까? 본인(이정현)이 원하는데 왜 그러세요? 얘기를 해 주세요. 그럼 그 말 취소하라"며 "회의가 아니라 지금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하니까 개인 명예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느냐. 제가 뭘 하는 걸 지적하려고 했는지 말씀을 하시라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언쟁을 지켜보던 김 전 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이 모습은 자연스레 지난해 7월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 파동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당시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자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해도 너무 한다"고 발끈했고 김 최고위원 역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회의를 주재하던 김무성 대표는 "그만하라"고 중재하려 했지만 김 최고위원은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고 결국 김 대표는 "회의를 끝내겠다, 회의 끝내"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회의장 밖으로 나가는 김 대표의 뒤통수로 "사퇴할 이유가 왜 없어? 무슨 이런 회의가 다 있어'라는 김 최고위원의 사나운 말과 김학용 대표비서실장의 "애XX들도 아니고"라는 욕설이 뒤엉켰다.
당시 새누리당은 몰아내려는 자들과 버티려는 자들로 큰 내홍을 겪었다. 사퇴만은 막아야 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어떻게든 사퇴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들 사이에선 불꽃 튀는 공방이 벌어졌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는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했고 극심했던 당내 갈등은 봉합되는 모양새를 보였다. 이후 계파 간 신경전과 기싸움은 있었지만 겉모습은 매끄러워졌다.
작년과 비슷한 듯 다른 현 상황…이대로면 분당까지?
'김무성호'는 20대 총선 참패 이후 짐을 쌌고 이후 약 3개월을 '김희옥 비대위'가 당을 이끌다가 지난 8월 9일부터 이정현 대표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김희옥 비대위에선 인사 문제, 전당대회 룰 문제 등으로 이 대표 체제에선 야당을 향한 대응 등으로 당내 갈등이 있긴 했지만 '유승민 파동' 때 만큼 강력한 충격을 주는 갈등 상황은 없었다.
평소 끊임 없이 질문 공세를 펼치는 취재진을 향해 툴툴거리다가도 금세 취재진의 요청에 응하는 김무성 전 대표가 오늘처럼 대놓고 '폭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7월과 이번 경우가 당의 위기라는 점에선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계파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있고 지도부를 향해 상대 계파에서 사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김 전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곳이 국회 대표실에서 당사 회의실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흡사해보인다.
그러나 상황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 차이점이 많다. '유승민 파동'의 경우에는 지도부 사퇴가 아닌 유 원내대표 개인을 겨냥한 요구였지만 이번에는 당대표를 포함한 지도부 전체를 향한 압박이다. 또한 사건의 경중에서 크나큰 차이가 난다. 당시엔 주류와 비주류의 대결로 비쳐졌다면 이번엔 권력자와 국민의 대결로도 여겨진다.
실제로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무선 100% 방식으로 실시한 11월 첫째주 정당지지도 정례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은 19.5%로 더불어민주당(32.3%)에게 한참 밀렸고 국민의당(14.4%)에게 바짝 쫓기는 신세가 됐다. 특히 표밭 TK에서 민주당과 격차가 불과 7,9%p에 불과했다. 심각한 민심이반 현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3당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라고 분석했다. 이 정도면 '최순실 사태'로 시작된 당내 갈등이 그동안 반복된 계파 싸움에서 끝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평론가는 "지금 새누리당의 갈등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다. 친박, 비박 한 쪽이 이기면 끝나던 지난 몇 번의 사례와는 차원이 다르다. 국민과 청와대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여당 지도부는 청와대를 감싸는 듯한 모양새에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지도부는 진짜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얼른 깨닫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분당설도 제기된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도 "지금 상황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당이 찾지 못한다면 비박계가 당을 나가면서 분당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해체가 되면서 당이 공중분해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이대로 흘러선 당이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전에 당의 계파 갈등이 있을 때는 그래도 대통령이 버팀목 역할을 해 분당까지 가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상황"이라며 "그러나 비박계가 독자적으로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 주자를 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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