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들 배반한 20대, 왜 인천상륙작전 '참전'하나
<김헌식의 문화 꼬기>현실모순 해결 위한 노력과 문화예술 작품 비전제시해야
기성세대에게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낯선 것이 많다. 역사적 사실은 더 그러하다. 하지만 미래의 주인공은 새로운 세대이며, 그들의 인식적 공감대로 흐름이 바뀌게 될 것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애초에 중장년층들이 많이 볼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20대의 청춘들이 많이 본 영화 가운데 하나로 등극했다. 이는 거대한 비밀처럼 그 원인을 미스터리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그 까닭이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많이 들어보았지만, 제대로 인천상륙작전에 관한 내용을 접해 본 적이 없다. 영화도 거의 없었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영화로는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간접적으로 다루기는 했지만 1963년 영화로 너무 멀다. 많이는 들어 봤지만 자세히는 모르는, 거기에 실제 있었던 사례의 첨가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호기심 자극만으로 버티기에 경쟁은 치열하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반공 영화, 21세기 배달의 기수라는 혹평 라벨링이 붙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평가한 이들의 판단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오락 영화로 소비되고 있다. 마치 할리우드 첩보물인 ‘제이슨 본’에 전쟁 영화물을 결합한 듯싶다. 다만 실제 스토리에 바탕을 뒀다고 하기 때문에 좀 달라보일 뿐이다.
물론 그 극적인 구성도 드라마틱하게 강화되어 오락적 액션이 강하다. 실제로 감독은 이러한 영화들을 참고 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 세계관이 치우쳐 있다고 판단된다면 우려하는 목소리는 나올 수가 있다. 예컨대 인민군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극단적이라는 평가가 이에 속할 것이다. 배경지식이 없을수록 남한 중심주의가 틀릴 수 없어 보인다. 관점에 대한 동의가 있는가가 문제인데, 그것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관객 수는 늘어날 것이다. 사실상 대중적 성공과 작품성이나 사회적 가치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영화라고 해서 훌륭한 영화라고 할 수가 없다.
어벤저스 시리즈의 경우, 오락 액션영화로 편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흥행이 된다. 다만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들이 할리우드 영화처럼 제작되고 소비되는 영화현실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고 이것이 인천상륙작전 논란에 투영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는 바로 이런 가치지향의 문제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나 ‘웰컴투동막골’과 같은 작품들은 인간적인 휴머니즘이나 낭만적인 인문주의를 강조한 영화로 눈길을 끌었다. 물론 이런 관점들은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관계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전쟁보다는 평화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감을 하는 것이지만, 한국전쟁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념전쟁으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 다시금 되풀이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쟁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은 젊은 세대일 수밖에 없다. 당장에 젊은 청춘들은 군대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한 일이 벌어져 왔다. 그것은 어떠한 당위적인 가치보다 피부에 닿는다.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침몰’이라는 것은 그렇게 젊은 세대에게 다가왔다. 그러한 맥락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영화 ‘연평해전’의 흥행으로 이어진 면이 있다.
대중 영화에서 관객들이 우선하는 것은 정서적인 결핍의 충족이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은 젊은 세대에게 공포와 불안을 줄 수밖에 없다. 전쟁의 위협과 그에 따른 팩트의 존재는 이러한 공포와 불안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의 해소가 없는 이상 이런 영화에서 남한 중심주의가 똬리를 틀 것이다. 그것이 손 쉽게 상업적인 흥행을 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렛잇고’라는 노래가 폭발적인 흥행을 하는 사회심리에서 보듯 사회보다는 가족, 가족보다는 자신을 우선하는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맞게 분단구조를 반영하여 젊은 세대에게 미래지향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영화를 넘어 소설에서도 그러한 작품이 있는지 의문이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말하고 있는 관점들은 한국전쟁 이후의 분단 대치 구조에서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것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만다. 특히나 2000년대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더욱 맥을 못 추고 있다.
비판적인 성찰의 작업들이 시대적 흐름 특히 새로운 세대들이 피부로 느끼는 것에 맞추어 공감대를 얻어내는 작업들이 존립하지 못했던 점들은 갈수록 선과 악의 적대적 대결을 통한 이분법적인 오락영화로 남북관계를 소비하게 만든다. 그러한 소비는 소모적이라는 점에서 남북의 평화통일의 과정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영화적 진실성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의 변화가 필요하다. 남한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비치는 한 북한의 이미지는 청춘들에게 편향된 선택을 강화하게 할 뿐이며 그들의 행위와 선택을 이용하는 이들이 권력과 이익을 챙기는 구조를 강화할 것이다. 액션 오락 영화코드는 영화적 완성도나 가치 지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남북 스스로 평화통일을 위해서 나아가는 모습을 영화적 진실이 담아내야 한다. 공포와 불안, 그것의 진정과 해소를 위해서 영화라도 붙잡고 있는 청춘들에게 기성세대가 변증법적인 해답을 해주어야 한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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