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의 문화 꼬기>예능 한꼐 이해하나 순발력 테스트에 그칠까 우려
tvN '노래의 탄생'이 화제인 이유는 포맷 자체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음악 예능 포맷이 뭐 다른 게 있을까 싶다. 특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형식은 특정 노래를 놓고, 참여자들이 노래 경연 대회를 벌인다. 대개 이는 리메이크 형태를 띠게 된다. 물론 그 리메이크는 편곡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는 프로듀싱 과정을 말한다. 기존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막론하고 프로듀싱 과정이 보여지지 않는다. 그러나 '노래의 탄생'에는 이런 프로듀싱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다른 프로그램에서난 알 수 없는 소요 시간이 핵심이다. 장애 요인 설정을 통한 긴장감을 주는 얼개인 것이다.
일단 음악 편곡 프로듀서와 가수는 짝을 이룬다. 특정 미션 곡을 놓고 설정된 시간안에 편곡 프로듀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직접 가수는 프로듀싱한 노래를 불러내야 한다.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대결을 벌여야 한다. 그 대결에서 선택된 팀에게만 음원 발매 권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 발매 권리가 능력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능력을 보이는 시간은 45분이다. 45분안에 모든 것이 이뤄져야 한다. 마치 셰프들의 요리 경연을 보는 듯 싶다. 쿡방에 나왔던 많은 셰프들은 거의 즉석으로 요리를 만들어내야 했다. 기존의 레시피를 단순히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그 자리에서 창조적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이 때문에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는 다양한 음식 볼 거리를 접할 수 있었다. 같은 요리 주제라해도 쉐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었다. 노래가 프로듀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런데 '노래의 탄생'에서 다른 점은 주어지는 미션 곡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노래라는 것이다. 이 점 때문에 기존에 노래 예능 프로그램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다른 음악 예능에서는 주로 잘 알려진 유명한 곡을 달리 불렀기 때문에 주목 끌기 쉬웠다. 익숙한 노래가 가수에 따라 달리 불려지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선사했다. 하지만 익숙 노래들만 반복되기 때문에 전체 음악의 외연을 확장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즉 유명한 곡에 기대어 답습적인 행태를 반복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곡을 쓰는 작곡 작사가들은 덜 중요해지기 마련이다. 또한 정말 음악 때문에 그 가수가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음악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면 더욱 그렇다.
이 점 때문에 이 '노래의 탄생'이라는 신개념의 프로그램이 약점을 노출할 수 있다. 기존의 노래가 아닌 새로운 노래를 프로듀싱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성이 취약할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미션곡을 선택하는 이들의 책임이 된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보는 이들의 주목을 단기간에 이끌어 내는 것은 익숙한 유명곡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기여점은 명확하다. 그런 점을 무시하고 오로지 새로운 곡을 괜찮게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지는 음악 발전과 외연의 확장에 기여할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원곡을 대중성있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프로듀서와 가수에게 즉각 위임되어 버리는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45분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45분안에 이뤄지기 때문에 설운도의 말대로 천재들이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천재에 해당하는 이들이 나서는 음악 예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 대중성 있는 노래에서 천재들의 역량이 필요한 것일까. 대체적으로 천재들의 역량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내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 그냥 순발력을 테스트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은 정말 뭔가 빨리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빨리빨리 문화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인데 이제 음악 편곡도 이렇게 해야 한다. 빨리 빨리 음악이 패스트뮤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긍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의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작 중요한 게 음악이 대중에게 얼마나 더 다가가는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단 두팀이 45분 안에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은 시청자의 처지에서는 매우 제한된 음악 취향이나 기호를 제시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단 마니아틱한 취향과 기호에 머물고자 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것을 통해 음악예능이 가진 답습적인 음악 코드가 많이 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복된 일이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