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현대중 노조, 주인이라면 짐도 나눠져야
알짜 계열사 오일뱅크 매각에 평생 호텔할인권 요구 '눈살'
“얼마전 삼성중공업 노동조합이 선주사를 상대로 직접 수주활동을 벌인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공정을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며 직접 선주 설득에 나섰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진정성을 선주들에게 직접 보여주겠다는 것입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채권단에 쟁의 활동 자제와 임금동결 내용을 담은 동의서까지 제출했습니다. 노동조합이 기업회생 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현대중공업 최고 경영진인 최길선 회장과 권오갑 사장이 지난 22일 창사 44주년 기념 담화문을 통해 언급한 내용이다.
자식들이 가장 서운해 하는 게 부모들이 자신을 남의 자식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물며 자사의 생일을 기념하는 글을 통해 타사 노조의 동향을 언급한 것은 지나친 처사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저런 일까지 벌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 회장과 권 사장은 타사 노조를 거론한 배경으로 전환배치에 대한 현대중공업 노조의 반발을 언급했다. 일감이 없어 어떻게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전환배치를 실시했지만, 노조가 회사에 대한 비난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중공업 노조의 울산 동구 국회의원 지지 후보 선택 투표 등에 대해서도 “이제는 회사를 정치판으로 끌고 가려 한다”며 “경쟁사 노조의 행동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사실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의 모습을 보면 이번 담화문에서 언급된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진행된 현대중공업 1분기 노사협의회에서 노조는 정년퇴직자에게 1년간 회사 운영 시설 이용시 할인 혜택을 주는 ‘명예사원증’을 무기한으로 연장해 줄 것을 회사에 요구했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정년퇴직자에게 명예사원증을 발급해 1년간 현대호텔과 현대미술관, 한마음회관 등의 이용을 할인해주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를 ‘평생 명예사원증’으로 바꿔 무기한 할인 혜택을 제공하라는 요구다.
이에 회사측은 조선 경기 침체로 경영위기가 심각하고, 매년 1000여 명의 근로자가 퇴직하는 상황에서 무기한 할인 혜택을 주면 비용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수용 불가 방침을 밝혀 미합의된 상태다.
또한 재직 중인 전 직원들에게는 가족여행 등의 용도로 현대호텔을 연간 2회 무료이용할수 있도록 해줄 것도 요구했다. 이 역시 회사측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지난해 전임 노조 집행부에서부터 시작됐던 현대오일뱅크 매각 요구도 현 집행부까지 이어지고 있다.
노조는 오는 25일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회사측에 발송한 ‘현대중공업 발전전망 공개질의서’를 통해 “현대오일뱅크 지분매각을 통한 경영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경영환경이 이렇게 어려워진 본질은 현대중공업 영업과 관련 없는 곳에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회사가 오일 뱅크 의결권을 가질 수 있는 50% 이상 지분을 남겨두 고 40%만 매각해도 약 2조5000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대자동차와 현대종합상사, 현대씨앤에프 지분을 잇달아 매각하며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현금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현대오일뱅크만은 남겨두고 있다.
회사가 조선업종 불황과 해양플랜트 부실로 9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동안 그나마 수익을 내며 적자폭을 줄여준 게 현대오일뱅크이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는 알짜 계열사까지 팔아가며 이전보다 더 과도한 수준의 복지를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게 지금 현대중공업 노조의 모습이다.
선주사를 상대로 직접 수주활동을 벌이고, 채권단에 쟁의활동 자제 및 임금동결 동의서를 보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모습은 스스로를 ‘외부인’으로 생각한다면 매우 숭고한 노력이고 희생이다.
하지만 노조와 조합원들이 스스로를 해당 회사의 ‘주인’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모두 ‘내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노조와 조합원들 역시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내 일터가 어떻게 되건 내가 필요한 것은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집 주인은 결코 자기 집이 무너지는 꼴을 지켜보지만은 않는다.
“저희들에게 회사를 살리는 일은 가정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회사가 잘못되면 저희 인생도 끝입니다. 저희들은 정말 심각합니다. 이제 갈 곳도 없습니다. 우리 회사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
CEO 담화문에서 현대중공업 모 과장의 발언이라며 소개한 글이다. 발언을 한 이 뿐 아니라 최길선 회장 이하 현대중공업의 모든 임직원들이 되새겨야 할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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