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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는 동쪽으로 가고 아폴론은 델포이로 간 까닭


입력 2014.07.13 09:34 수정 2014.07.20 20:59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박경귀의 ad Greece! 18>신의 계시 전해주던 신탁의 성지, 신비의 산 파르나소스를 넘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유럽 문명의 시원이자 인류 문명의 원천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창조해낸 독창적인 문화와 문명의 자취는 숱한 고전과 유물, 유적으로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여기엔 그리스의 12신과 영웅은 물론 현인과 보통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열광과 환희, 고통과 좌절로 점철된 뜨거운 삶의 궤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역사문화 탐방은 그리스 고대 문명과 영욕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화기행이자 미학기행입니다. 오늘날 혼돈에 빠진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새로운 지혜를 탐색하는 ‘나를 찾는 여행’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발견하느냐는 각자 자신의 몫입니다. 열린 눈, 열린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시지요. ad Greece!!< 편집자 주 >

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오, 아폴론 신이여, 제우스와 레토(Leto)의 아들이여,
저는 노래를 시작하거나 끝낼 때
언제나 당신을 잊지 않고 찬양할 것입니다.
항상 노래의 처음과 끝이나 중간에 당신을 찬양할 것입니다.
저에게 귀를 기울여 주시고
저에게 좋은 일을 내려 주십시오.
포이보스(Poibos)여, 여신 레토가 수레바퀴처럼 둥근 호숫가에서
가느다란 손으로 종려가지를 잡고
불멸의 지고한 아름다움을 지닌 당신을 낳았을 때,
신성한 제단이 있는 델로스(Delos)의 강가에까지
감로향이 가득 넘쳤습니다.
거대한 대지에 웃음이 넘치고
깊은 바다도 흰 포말을 일으키며 기뻐했습니다.“

BC 6세기 메가라의 시인 테오그니스(Theognis)가 읊은 ‘아폴론 찬가’다. 아폴론은 쌍둥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인의 지극한 숭배와 사랑은 받은 올림푸스 12신 가운데 하나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는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다. 레토는 제우스의 본부인 헤라의 질투와 방해로 아이를 낳을 곳이 없어 그리스 땅을 전전한다. 그녀의 안타까운 호소에 응답한 포세이돈이 바다 속에 가라앉은 섬을 띄워 만든 델로스 섬에서 레토는 어렵게 두 남매를 해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델로스 섬이 아폴론 신앙의 발원지 역할을 한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델로스 섬을 넘어 종교적으로 아폴론 숭배의 중심지가 된 곳은 델포이(Delphoi, Delphi)다. 델로스가 에게 해의 배꼽이었다면 델포이는 세계의 배꼽이었다. 실제로 델포이는 서쪽으로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부터 동쪽으로 소아시아와 아나톨리아, 남쪽으로 아프리카의 리비아, 북쪽으로 마케도니아 너머 야만족의 나라를 둘러싼 고대 사회의 세계 지리에서 중심에 위치했다.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테네 학술원 정문 앞에 높이 솟은 좌대 위에 아폴론 상, 예술적 역량을 타고난 아테네인들은 아테나와 함께 음악의 신 아폴론을 애틋하게 숭배했다. ⓒ박경귀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 그리고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델포이에 또 다른 성전을 마련하면서 그리스의 신에서 온 세상의 신으로 확대되었다. 오늘날 델피로 불리는 델포이는 그리스인의 정신적 고향이자 문명의 배꼽이 되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 델포이를 찾아간다. 1월 30일 새벽 5시 30분에 아테네의 중심지인 신타그마 광장 인근에 있는 헤르메스 호텔을 나섰다. 인근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 델포이로 출발했다. 아크로폴리스와 가까운 시내 중심지에 있는 호텔의 경우 대부분 부속 주차장을 갖고 있지 않다. 렌트카를 이용한 자가운전 여행자는 아테네 시내에서 숙박할 경우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노외주차장도 보다 게이트를 갖춘 정식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비싸긴 하지만 안전하다. 6시간 주차비가 12유로, 우리 돈으로 17,000원 정도다. 이른 새벽에 출발할 예정이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배치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아예 출구 옆에 주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테네 시내 중심지에 있는 한 유료 주차장, 안심하고 차를 맡길 수 있다. ⓒ 박경귀

델포이는 아테네 서북쪽으로 180km 정도 거리에 있다. 파르나소스 산의 험한 길을 넘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자동차로 넉넉하게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계산하면 마음이 느긋하다. 아테네 시내를 벗어나 1시간 정도 달리니 동녘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서광(瑞光)이다.

델포이로 가는 동안 여명의 대지와 붉게 물들인 하늘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7시 경쯤이다. 보이오티아 주를 지나면서 맞이한 그리스의 일출이 장관이었다. 멀리 보이오티아 지방의 호수와 잠을 덜 깬 대지가 만들어낸 환상적인 장면이 달리던 길을 잠시 멈추게 했다.

그리스의 겨울 새벽은 쌀쌀하다. 낮 동안에는 15도 안팎까지 오르내려 포근하지만 새벽의 기온은 4~5도까지 내려가 매우 춥다. 물론 한국의 혹독한 겨울 날씨에 비하면 따뜻하지만. 황홀한 일출의 여운은 고속도로에서 국도로 접어들 때까지 이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일출의 설렘을 만끽했다. 델포이 가는 길이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다.

델포이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일출 전에 아름답게 물든 하늘 ⓒ 박경귀

델포이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맞이한 보이오티아 지방의 일출 ⓒ 박경귀

델포이로 향하는 보이오티아 지방 국도에서 맞이한 일출 ⓒ 박경귀

아폴론은 왜 델포이로 향했을까? 아폴론을 수호신으로 모신 도시국가들은 많았다. 아폴론이 머물며 신의 가호를 베풀어야 할 성소가 많았던 셈이다. 탄생지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은 말할 것 없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중심도시였던 코린트와 지금의 터키의 서부 연안 도시에 속하는 고대의 소아시아 지방의 디디마(Didyma)에 있는 아폴론 신전 역시 주변 도시들에게 아폴론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 내륙에 있는 바사이 아폴론 에피클레오스 신전 또한 이름난 곳이다. 외진 곳에 있어 약탈을 면해 원형에 가장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재건 작업 중이어서 관람이 제한적이다.

5곳의 대표적인 아폴론 신전 가운데 코린트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지난 1월에 답사했다. 디디마와 델로스, 바사이의 아폴론 신전은 가보지 못했다. 2013년 7월에 터키를 여행할 때도 에페소스만 보고 디디마는 놓쳤다. 또 올해 1월 그리스 여행에서도 델로스의 아폴론 신전 유적지를 가보지 못했다. 미코노스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쉬움이 너무 크다. 사연은 이렇다.

델로스는 작은 무인도여서 반드시 미코노스 섬에서 배를 갈아타야만 드나들 수 있다. 1월에 미코노스 섬에 들어가니 사전에 여행사를 통해 파악한 배 편 정보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절기에 1일 1회만 운행한다던 배편은 금요일과 주말만 1회씩 운행하고 있었다. 바쁘다 보니 여행사 정보만 믿고 다시 현지 사정을 확인하지 않은 나의 잘못으로 델로스 섬 코앞까지 가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대신 미코노스 고고학 박물관과 시내 관광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아폴론 신앙의 발원지이자, 한 때 그리스의 정치 경제적 중심지였던 델로스 답사를 빼놓을 수 없다. 기회가 되면 다섯 곳의 아폴론 신전을 모두 확인하고 싶다. 각각의 신전마다 색다른 풍광과 신화와 설화, 그리고 숱한 문화유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8월에 델로스 섬을, 9월에 터키의 디디마(현재의 디딤) 답사 일정을 확정했다. 이번에는 그리스와 터키의 연결 국내 항공을 확실하게 예약했다. 배편도 하계 관광 시즌이라 매일 운항하니 심한 풍랑이 일지 않는 한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바사이는 복원이 완료되면 가보고 싶다. 1975년 시작된 2차 복원 사업이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현존하는 아폴론 신존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으니 복원이 완료되면 아마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을 것 같다.

코린트의 아폴론 신전 유적, ⓒ 박경귀

다섯 곳의 아폴론 신전 중에서 델포이와 디디마의 아폴론 신전은 신탁(神託, Oracle)을 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아폴론의 지혜와 통찰, 선견지명을 인간에게 전해주는 게 신탁이다.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 개인의 복잡한 인생사의 선택에 앞서 신의 목소리에 의지하던 관습은 하나의 신앙으로 발전했다. 특히 델포이의 신탁이 유별나게 영험해서 그리스인을 넘어 당대 세계인의 관심과 숭배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델포이의 신비로운 신탁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우뚝 솟은 파르나소스(Parnassos, 2,457미터) 산의 위엄과 신령(神靈)한 풍광에서부터 델포이의 보이지 않는 힘이 확연히 느껴진다. 제우스가 태어난 크레타의 이다 산정에서 보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험준한 영봉(靈峰)과 백설(白雪)이 산 아래의 풍요롭고 기름진 보이오티아 지방의 구릉과 묘한 대조를 이뤄 신비감을 더해 준다. 순백(純白)은 내세의 상징이기도 하다. 파르나소스 산의 영기(靈氣)는 신들의 거처로 손색이 없다. 델포이를 찾는 이들에게 파르나소스의 신령한 풍광이 덧붙여져 델포이의 신성함이 더 크게 느껴졌을 법하다.

아테네가 있는 아티키(Attiki) 주를 벗어나 드넓은 평원을 지닌 보이오티아 주에 들어서면 저 멀리 파르나소스 산이 떡하니 앞을 가로막는다. 아침 햇살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파르나소스 산정의 풍광을 대하노라면 자연의 위대함과 신비에 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파르나소스 산정의 외양과 이미지는 해 뜨기 직전부터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1시간 가까이 신비한 정기가 느껴지는 파르나소스 산정을 바라보며 델포이를 향해 달리는 이른 아침 길은 독특한 감동을 안겨준다. 아폴론의 계시를 듣기 위해 여러 나라의 숱한 방문객들이 델포이를 찾아 갈 때, 특히 아티키 쪽에서 육로로 갈 경우 바로 이 길 언저리를 걸어갔으리라. 동 뜨는 새벽에 출발하여 하루 종일 파르나소스 산의 신령한 모습을 바라보며 길을 재촉했을 신탁을 구하는 사절단의 행렬을 상상해 본다.

페르시아를 치려던 야심을 가졌던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이(Kroisos, ?~BC 546?)가 델포이의 신탁을 듣기 위해 보낸 사절단이 통과한 길도 여기쯤 이었을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를 정벌해야 할 지 말지 아폴론의 계시를 듣고 싶어 했다. 3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밀물처럼 휩쓸며 그리스 전역을 유린하던 페르시아 대군이 아테네 코앞까지 왔을 때, 백척간두에 선 아테네의 운명을 묻기 위해 아테네의 사절도 델포이로 향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라를 구할 방책을 찾으려던 이들이 촌각을 다투며 이 길을 달려갔으리라.

이른 아침 햇살에 신비한 빛을 내뿜는 파르나소스 산정, ⓒ 박경귀

머리에 흰 눈을 이고 있는 파르나소스 산정의 모습, 신령(神靈)한 기운이 가득하다. ⓒ 박경귀

3번 국도에서 바라본 파르나소스 산의 모습 ⓒ 박경귀

파르나소스 산의 신비로운 모습과 신탁을 구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상황을 상상하는데 정신을 쏟다 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3번 국도로 달리다 파르나소스 산 가까이 가서 왼쪽으로 난 48번 국도로 갈아타야 했는데 그만 지나치고 말았던 거다. 델포이를 가기 위해선 파르나소스 산이 낮아진 왼쪽 끝자락으로 우회한 국도로 접어들었어야 했다. 다시 오던 국도를 되돌아가서 우회하면 되는데 편안한 국도로 되돌아가느니 이왕에 파르나소스 산을 더 깊숙이 들여다 볼 겸 지방도로로 가로질러 산을 넘어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시간 2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렸고 파르나소스의 속살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산 속으로 깊이 진입하면 정작 산을 볼 수 없게 되는 법이다. 도로는 거의 농로와 비슷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더구나 노면이 깊게 패인 곳이 수두룩하여 이를 요리조리 피하는 운전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굽이굽이 험준한 파르나소스 산 허리를 넘느라 큰 고생했다. 이 와중에 다브레이아(Davleia)와 아라호바(Arahova)라는 작은 산골마을을 지났다.

마을을 통과할 때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그나마 마을을 벗어나면 조금 넓어졌다. 그리스의 시골 마을의 경우 대부분 도로를 위해 마을길을 넓히지 않고 마을 안은 1차선으로 그대로 두고, 마을을 벗어나면 조금 넓어지거나 2차선으로 확장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마을 밖에서 차를 마주치면 피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산길을 넘는 동안 차를 한 대도 만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도로 사정으로 보면 한국의 여건은 너무나 훌륭한 편이다. 우리 농촌의 경우 마을길까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고, 국도와 지방도가 거미줄처럼 잘 이어져 있다. 아무튼 그리스에서 한국의 지방도로의 수준을 기대했던 것은 판단 착오였다. 그리스의 산악 지방도로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방인은 결코 이런 모험을 해서는 안 될 듯싶다. 하지만 걸어서 산을 넘었던 델포이를 찾는 방문객들이 겪어야 했을 고초에 비하면 나의 자동차 여행은 왕도 못 누릴 호사스러운 나들이 길이 아닌가.

산을 간신히 넘어 48번 국도를 다시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제 델포이가 지척이다. 하지만 델포이로 오르는 국도는 산의 7부 능선쯤에 걸려 있었다. 아테네에서 델포이 가는 큰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유적은 아테나 프로나이아 성역(Athena Pronaia Sanctuary)이다. 가는 길 왼편에 있다. 이곳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시간제한도 없다. 그러니 그대로 위로 올라가 델피 박물관과 아폴론 신전 유적지를 먼저 보고 내려오면서 관람하면 좋다. 물론 시간 여유가 있으면 더 서쪽으로 넘어가 델피 마을을 들러보고 오는 것도 괜찮다. 아테나 성소를 보려면 주의할 점이 있다. 내리막길이고 별도의 주차장이 없어 차를 갓길에 세워야 한다. 또 올라 갈 때 눈여겨 보아두지 않으면 내려 올 때 표지판을 잘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기 쉽다.

아테나 프로나이아 성역의 표지판이다. ⓒ 박경귀

델포이로 오르는 국도는 잘 포장되어 있지만 간간히 급커브길이 많고 길의 오른편으로 깎아지른 듯 우뚝 솟은 파르나소스 산의 회색빛 암벽이 이어져 있어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집중해서 운전해야 한다. 암벽 중 군데군데 황토색을 드러낸 부분은 암벽이 떨어져 나간 지 오래되지 않은 곳들이다. 언제든지 암벽 붕괴의 위험성이 상존하는 험지(險地)다. 세계의 배꼽은 첩첩 산중 속에 있었다.

암벽 붕괴의 가능성이 오히려 델포이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때도 있었다. BC 480년 페르시아 군대가 델포이를 약탈하기 위해 쳐들어왔을 때 갑자기 암벽이 붕괴되어 군사가 피해를 입게 되자, 신의 노여움을 타게 된 것으로 여겨 후퇴했다고 한다. BC 279년에는 켈트족의 침공하자 델피인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이런 일의 처리는 내게 맡겨라”는 신탁이 내려졌고, 이후 켈트족의 군대에 암벽의 돌덩이가 굴러 떨어지고, 지진과 심한 눈보라가 몰아치자 퇴각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튼 아폴론 신이 진노한 것인지 모르지만 취약한 암벽을 지닌 파르나소스 산의 자연 재해가 침략군에게 델포이의 신성함을 상기시키는데 기여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BC 480년에는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도 길가에 아무렇게나 박힌 큰 바위와 아테나 프로나이아 성역 주변에 나뒹구는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들이 잦은 암벽 붕괴의 정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델포이로 오르는 길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위덩어리들, 암벽 붕괴의 잔해들이다. ⓒ 박경귀

아테나 프로나이아 성역에 있는 아테나 신전 터, 암벽에서 굴러 떨어진 큰 바위가 그대로 있다. ⓒ 박경귀

아테나 성역에서 가장 독특하고 뛰어난 유적은 톨로스(Tholos)다. 톨로스는 원형건물을 뜻한다. 지금은 3개의 기둥만 남아 있지만 건축 당시의 위용은 대단했다. 20개의 도리아식 원형기둥이 외부를 감싸고 내부에는 벽체 안에 13개의 코린트 양식의 반원형의 기둥이 둘러싸며 지붕을 받든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이와 유사한 유형의 원형건물은 올림피아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건축물이 워낙 아름답고 유명하다보니 일부 책자나 기행문에서 이곳을 아폴론 신전 또는 아테나 신전으로 잘못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아폴론 신전은 좀 더 위쪽에 위치한 아폴론 성역의 중심에 있고, 아테나 신전 역시 톨로스 옆에 따로 있다. 톨로스가 특정한 신을 모신 신전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만 톨로스의 기능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이 아름답고 균형 잡힌 건물을 아테나 성역의 중심에 건축했을까? 델포이 성역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범그리스 성역(Panhellenic Sanctuary)이었다. 따라서 이곳에서 신탁을 구하거나 참배하기 위해 그리스와 세계 각국의 저명인사들이 많이 찾았을 것 같다. 또 그리스 국가들이 인보동맹(隣保同盟, amphiktyonia)을 맺고 델포이의 신전령(神殿領)을 그리스 세계의 공동의 재산으로 보호하기 위해 이곳을 침탈하려는 적들에 맞섰다. 세 차례의 신성전쟁(Sacred Wars)이 벌어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톨로스가 델포이 신역의 중요 대사에 관해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협의하는 국제회의장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실제로 델포이 아폴론 성역과 아테나 성역에는 신들을 위한 신전과 보물창고는 많았지만 각 도시국가들이 갖고 있던 공공청사와 영빈관 같은 건물이 없다는 점에서 이런 추정은 가능하지 않을까? 톨로스 안쪽에 특별한 장식물이 없이 원형의 벽체와 걸터앉을 수 있는 기단 정도만 있었던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다. 신들을 위한 성역의 공간에서 인간을 위한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위에서 내려다 본 아테나 성소의 전경과 톨로스 ⓒ 박경귀

북쪽에서 바라본 톨로스, 건물 앞 큰 올리브 나무가 방문객의 쉼터 역할을 했을 듯싶다. ⓒ 박경귀

동쪽에서 바라본 톨로스, 4단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기단이 완벽하게 보존되었다. ⓒ 박경귀

동쪽에서 바라본 톨로스, 파르나소스 산의 암벽이 언제라도 붕괴되어 쏟아질 듯 위태롭게 보인다. 암벽 및 토사의 붕괴에 대비해 위로 여러 번 돌 벽을 쌓았다. ⓒ 박경귀

톨로스의 평면도, 외부에 20개, 내부에는 13개의 원형기둥이 지붕을 받들고 있다. ⓒ 박경귀

톨로스의 내부 복원 추정도, 하단의 기단이 빙 둘러앉는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박경귀ⓒ

아테나 성역에는 모두 5개의 메인 건축물이 있었다(건물에 번호가 붙여진 아래 사진 참조). 현재는 5번 건축물인 톨로스만 3개의 기둥과 기단이 남아있고, 다른 건물은 주춧돌의 일부만 남아있다. 오른쪽의 1번 건물이 아테나 주 신전이다. BC 7세기 중엽에 처음 건축되어 5세기 초에 다시 건축되었다. 2번 건물 역시 작은 아테나 신전이다. 4세기 중엽에 이 지역에서 나는 회색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이렇게 아테나 신전이 자주 재건축된 것은 잦은 지진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3번 건물은 BC 480년 이후에 세워진 보물 창고다. 4번 건물은 맛살리아(현재의 프랑스 지중해 연안 도시 마르세이유)인들의 봉헌물을 보관하던 보물창고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곳곳에 개척한 여러 식민도시들에게도 델포이가 중요한 성소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그리스의 신전과 건물의 입구는 거의 동쪽으로 향하도록 짓는 게 특징적 법식이다. 하지만 아테나 성역에 있는 건물들은 이런 법식에서 벗어나 남쪽을 향해 지었다. 파르나소스 산의 암벽에서 자주 붕괴되어 쏟아지는 암석으로부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그리스인들의 융통성과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아테나 성역의 건물들의 복원 추정도가 담긴 안내판, ⓒ박경귀

5번 건물은 톨로스, 2번은 아테나 신전, 3번은 보물창고다. ⓒ박경귀

톨로스의 기둥이 파르나소스 산의 암벽과 뒤편으로 보이는 핀도스 산맥의 산정 사이에서 고고한 기품을 드러낸다. ⓒ박경귀

맛살리아인들의 보물창고의 단면도. ⓒ박경귀

델포이의 신탁을 듣기 위해서는 몸을 정화하고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최고 여사제와 보좌 사제들은 아폴론 신전에 들기 전에 반드시 동쪽의 절벽 계곡에 있는 카스탈리아의 샘(Kastalian Spring)에서 목욕재계했다. 신탁을 구하는 사절단과 방문자 역시 이 절차를 지켜야 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상징이다. 신령스런 파르나소스 산에서 솟아나는 물은 인간을 정화하는 성수(聖水) 역할을 한 것이다. 몸을 정결하게 하고 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다잡는 것은 신의 계시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었던 셈이다.

현재 카스탈리아 샘 유적은 철망으로 보호받고 있다. 언제든지 암벽 붕괴의 위험이 있고, 백설을 머리에 얹고 있는 파르나소스의 신성한 기운을 맛보기 위해 몰려드는 탐방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래도 샘 유적과 조금 떨어진 왼편의 절벽에 성화를 모신 기도처가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카스탈리아 샘의 생명과 정화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받으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아폴론의 계시를 받으러 가는 성스런 길에 마지막으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이 바로 카스탈리아 샘이다. 나도 이곳에서 옛날처럼 목욕재계는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음의 세례만은 흠뻑 받았다. 자 이제 아폴론과 접신(接神)하는 여사제 피티아(Pythia)를 만나러 가자(다음부터 델포이 박물관 및 아폴론 신전 유적 답사에 나선다).

카스탈리아 샘 유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보호하고 있다. ⓒ박경귀ⓒ

카스탈리아 샘 왼편에 만들어진 기도처, ⓒ박경귀


글/박경귀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박경귀 기자 (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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