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죽인게 신권 때문? 번지수 잘못 찾았다
<김헌식의 문화 꼬기>왕권 견제 3정승 제도로 이어져
이방원의 등장은 명나라에 적극 복종하는 정권 탄생
드라마 '정도전'은 한국 역사에서 외면 받아왔던 삼봉 정도전을 적극 부각시켰다. 이 드라마는 정도전이 조선 내내 외면을 받았던 것은 왕권을 견제하고 재상중심의 신권 정치를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묘사했다. 정도전이 왕권 위에 신권을 놓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고려에 비교했을 때 제도적으로 신권의 왕권 견제 제도는 조선에서 운영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전의 이상이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왕권을 견제하는 재상 중심의 정치 제도를 구현하려 했던 정도전의 정치 구상은 조선의 의정부 3정승 제도(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로 이어졌다. 또한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언론 3사를 필두로 왕이 통치하는 국정에 대한 언로를 확보하고 왕권을 견제하도록 했다. 조선 시대 내내 왕권과 신권은 대립의 대립을 거듭했다. 고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많은 드라마에서 왕권을 위협하는 것이 신권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 신권은 개혁을 추진하는 왕들을 위협하는 정치 세력에 불과했다. 즉,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고 왕을 암살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이를 왕위에 옹립하는 세력이었다. 왜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그려지는 것일까?
드라마 '정도전' 마지막회에서 정도전은 이렇게 말한다.
"왕은 민본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왕은 이씨가 물려받지만, 재상은 조선의 여러 성씨가 돌려 가며 맡을 것이고 그 성씨들은 백성이다. 백성이 재상을 돌아가면서 맡게 되는 민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정말 가슴 뛰는 말이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왕을 견제할 수 있는 재상에 백성 누구나 앉을 수 있다니 말이다. 정도전은 그것이 민본의 사회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상이 누구나 될 수 있는 사회가 민본의 사회라면, 노비나 백정도 능력만 있다면 재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신분제를 타파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정도전이 신분제도의 타파를 주장했다는 사실은 발견하기 힘들다.
고려의 귀족 사회를 거부했지만, 조선은 여전히 양반을 중심으로한 신분제 사회였다. 사농공상의 서열이 엄격하게 존재했다. 사는 양반들이 차지했다. 조선은 양반 중에서도 문신이 무신의 우위에 선 나라였다. 군자의 나라는 선비의 나라를 의미했다. 군자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문사를 중심으로 한 언로정치를 구현하는 것이 정도전의 의지였을 게다.
하지만 성리학을 따르지 않는 이들은 선비가 될 수도 없고, 관직 진출을 통해 재상이 될 수도 없었다. 정도전이 생각한 민본의 맨 얼굴은 성리학이 전제 되어 있었다. 겉으로야 누구나 과거를 보고 관직에 진출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실제로 일반 백성들이 관직에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이상적으로 꿈꾼 사회는 주나라와 같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였다. 그것은 현실에 맞서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혁신을 통해 성취해 나가려는 도전적이고 능동적인 실천 의지와 배치 되는 것이었다. 그 사회는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사회였다. 예측과 통제가 명확한 사회일수록 다양성과 실험은 제한되고 만다.
이렇게 근본적인 혁신 의지가 부족한 양반관료들은 재상중심의 정치제도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분투했다. 왕권을 견제하려한다는 명분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제도의 맹점을 의미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것을 운영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드라마 '정도전'은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통해 이방원이 그를 제거하고 세력을 전복시키는 이유도 왜곡하고 말았다. 이방원이 정도전은 물론 세자까지도 없앨 수 있었던 힘은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며 단지 주변의 몇 몇 수하의 힘 때문만이 아니었다.
특히, 하륜이라는 인물 하나 때문만도 아닌 것이다. 정치적 사변은 테러행위가 아니라 집단적 세력의 이동과 결집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치적 지배자의 등극은 세력의 대표자가 부상하는 것이다. 정도전이 제거된 친명 사대주의자들이 그를 반대 했기 때문이다. 즉 요동 정벌 등 명나라에 대항하는 정도전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이방원에게 동조하면서 정치권력을 뒤집을 수 있었던 정치적 사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세력을 잡은 이방원이 정도전이 주장한 정책들을 대부분 수용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정도전이 제거된 것은 그의 국내 정책 때문이 아니라 그의 국제 정치 노선 때문이었다. 한편 정몽주는 고려를 지킨 충신이기도 했지만 대표적인 친명 사대주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몽주가 정도전보다 대외적으로 더 내세울 만했다. 명나라 관점에서도 이방원은 인정할만 했다. 이방원은 요동 정벌 같은 것은 별로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방원의 등장은 조선이 명나라에 적극 복종하는 정권의 탄생을 의미했다.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이 반원 정책을 통해 원나라를 물리치고 명나라를 통해 원나라를 견제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부국의 전제가 자주적인 나라라는 것을 당대의 누구보다 인식하고 있었다. 정도전을 두고 정말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재상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되려면 요동을 차지해 다른 나라가 건드릴 수 없는 나라의 규모를 갖는 일이었다. 그러한 규모를 가졌을 때 병자호란이나 정묘호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은 없었을 지 모른다. 물론 일제의 식민지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조선이 요동을 차지했더라면 청나라는 건국될 수 없었고,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 세계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2014년 김수현과 전지현의 생수 광고 논란이 있을 이유가 없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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