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기틀 만든 정도전에 목메는 마초 바보들
<김헌식의 문화 꼬기>백성 위한다며 양반세상 만들고
지역 자치시스템 붕괴에 무역 상업 천시로 나라 경제 망쳐
지식인들이 정도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나라를 건국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나라를 세웠다함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다. 지식인들이 공부를 하는 이유는 바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이니 말이다. 지식인 여부를 떠나 바람직한 나라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나라를 새롭게 만드는 일, 정도전이 혼자 이뤄냈다는 설정은 지식인은 물론 일반 시청자에게도 흥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런 점이 드라마 '정도전'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일었던 이유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정도전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흥미를 자아내지만, 정작 중요한 물음이 빠져 있다는 걸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도전은 모두가 군자가 되는 나라, 백성을 위한 나라, 그리고 재상 중심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고려를 붕괴시킨다. 그리고 성리학적 중심의 나라를 건국하고자 한다. 그가 정말 조선을 건국했다면, 그 나라를 만드는 과정에 재미있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나라가 정말 바른 나라였는지 따져 봐야 한다. 정말 고려는 당연히 무너뜨려야 하는 나라였고 그렇게 문제만 많았던 나라일까. 이인임이 귀족만을 대변했던 인물인지 논란점이 여전히 있다.
귀족의 나라라면서 고려를 붕괴시킨 정도전은 5%의 양반이 지배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계급사회를 고려보다 더 가혹하게 만들었다. 성리학을 사상적 이념으로 삼은 양반을 초특급엘리트 집단으로 만들어 계층 간 신분이동이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상류층으로 신분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성리학에 바탕을 둔 과거제도로 일원화시켰다. 왕족 그리고 양반 가문간의 통혼은 더욱 심해졌다.
지역의 실력자들의 난입을 막는다며 중앙 집권화 시킨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을 통한 발전을 제약했다. 왕을 견제하는 신권, 즉 재상중심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중앙 집권적 관료체제를 만들어 지역의 자율적 시스템을 붕괴시켰다. 아직도 한국은 지역의 자율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고 있다. 백제의 담로제 지역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일본은 지역 실력자의 경쟁을 유지하여 무역과 개항을 통한 근대화에 일찍 성공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다. 조선은 지역의 실력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자율적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중앙정부에 복속, 집권화 하였고, 그것이 초반부의 발전을 구가하기는 한다. 그것이 세종시기의 발전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초기 발전과 같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국가들은 발전이 쇠퇴한다. 자율적인 경쟁과 그로인한 창조성이 퇴보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재상 중심의 나라를 만들어도 나라 전체가 후퇴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정도전이 만든 조선은 공업과 상업을 억제하고, 무역을 금지시켰다. 무역과 상업을 금지 시킨 것은 나라 전제를 가난하게 만든 핵심적인 이유가 되었다. 이는 고려와 반대로 취한 정책이었다. 고려가 무너뜨림의 대상으로 당연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드라마 ‘정도전’은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대적 관점으로 본다면 거꾸로 역사를 퇴보시킨 점이 바로 상업과 공업, 무역을 금지 시킨 것에 있다. 특히, 상업과 무역의 금지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독점하는 권력의 독점과 부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도전은 토지를 균등하게 배분하는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것은 주나라와 같이 농업에 기반을 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공자의 사상이 주나라를 모델로 했기 때문에 유학자들의 이상향은 주나라가 될 것이며, 동이족의 조상이자 상업의 나라였던 은(상)나라는 멸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농업에 기반을 둔 나라는 통치자에게 유리한 나라이다. 농업은 모든 이들의 식량을 만들며, 백성들은 정확하게 세수를 바치며, 무엇보다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업과 무역, 공업을 억제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농업을 중시하되 공업과 상업, 무역을 같이 중시하는 나라를 만들어야했다. 정도전이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다 같이 나물에 물 마시는 가난한 선비의 나라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선비들은 경전만 보고 과거를 보려 할 뿐 정작 생산을 하지 않았다.
백성을 위한다던 그들은 생산을 위한 방책도 고민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런 무위도식하는 특권층들을 위한 몫까지 생산해야 했다. 그런 나라에서 아무리 경세제민, 백성을 위한 나라를 외친들 나아지는 게 있을 수 없다. 창조적 상품의 개발과 무역을 통해 국부를 창출하고 민간의 동기부여와 자율적 창조성이 장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시스템에서는 여성들이 가혹한 착취의 대상이 된다.
성리학의 문치주의는 필연적으로 군사력과 안보를 허약하게 만들었다. 공업의 억제는 군사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 무역은 다른 나라의 선진 무기시스템이 들어와 발전하는 계기를 원천적으로 막았다. 유럽의 조총이 조선에 먼저 왔다가 일본으로 쫓겨 가서 거기서 대량 생산되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주력 무기가 된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치주의는 군벌들의 등장을 강력하게 억제하며 조선을 오랜 동안 유지시켰지만, 나라 전체는 날로 발전하는 외세에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을 앗아가게 했다.
정도전이 유학, 나아가 성리학만이 유일무이한 학문이자 통치이데올로기로 만든 것은 이방원이 왕위를 찬탈한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성리학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존재 자체를 파괴당해야 했다. 나라의 일에 참여하는 자들은 유학 경전을 외우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했다. 조선의 부흥을 이루었다는 정조가 붙잡고 있던 것도 성리학이었다.
다른 사상들은 조선 내내 배척되었고, 다른 사상을 받아들인 이들은 혹세무민이라 하여 멸문지화를 당했다. 오로지 성리학만을 신봉하도록 만든 것은 정도전이다. 다양한 사상이 받아들여지고 경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나라 전체를 획일적이고 편협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정말 백성을 위한다면, 다양한 사상을 언제나 받아들일 유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리학만이 옳다는 절대적 아집의 독선주의를 누가 만들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신분이 미천했던 정도전이 무시당하던 성리학자들을 이끌고 변방의 장수였던 이성계를 옹립하여 나라를 세운 것은 강한 비주류들의 강한 대리만족을 안겨준다. 철옹성 같은 기득권 주류들을 타개하며, 권력을 잡아나가는 과정이 쾌감을 선사한다. 또한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신념은 민주주의 국가와 연결 되는 점이 있어 현대적 관점과 맥락이 닿는 것으로 보인다. 왕권을 견제한 재상중심의 시스템은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여 제왕적 대통령제를 억제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정치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전체 나라의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 전체 시스템을 위해 정치 제도가 있는 것이다. 드라마 ‘정도전’은 이상적 정치를 반복하며, 그의 포부를 부각시킨다, 주나라를 이상으로 삼는 성리학의 나라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현실의 경제적 관점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관념의 나라일 뿐이다. 나라의 국부 창출과 그것이 민생 그리고 국방력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해 무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시 공산주의 경제모델에 왕권-신권 정치를 결합했을 뿐이다. 그런 나라는 필연적으로 사대주의를 강화해 큰 나라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진화시킬 뿐이다.
백성을 위한 나라를 외치지 않은 위정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 정도전처럼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나라는 경전에 나오는 대로 따라 민본을 외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도전은 백성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나라가 무엇인지 말이다.
백성을 위하는 나라는 지금이나 그때나 자유로운 물적 토대의 생산과 유통 소비 그것이 다시 선순환 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 위에 민본이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있다. 그것이 우선하지 않고 특정 이념에 매몰되는 것이 오히려 반민본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확고하게 하려는 획책에 불과하다. 정도전의 나라는 문치적 정치 과잉의 나라였다. 정도전을 이방원이 제거하지 않았어도, 정도전의 나라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어떤 이들은 정도전이 매우 훌륭한 정치드라마라고 한다. 정치권력을 갖고 싶은 모양이다. 정치는 게임이 아니다. 정치투쟁에서 승리하여 정치 권력을 갖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시스템, 그 안의 콘텐츠를 뭘로 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글/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주)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