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타는 어디 갔지?"…조선기술의 진화
LNG 쇄빙선, LNG-FSRU…까다로운 선주들의 요구가 변종 선박 등장 이끌어
선미 하부에 장착된 스크루로 추진력을 얻고 그 뒤에 달린 방향타(rudder, 키)로 방향을 바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박 구동 방식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을 깨는 선박이 등장했다. 하나, 혹은 많아야 두 개 있어야 할 스크루는 무려 세 개나 달려있고, 그것도 선체와 직접 연결된 게 아니라 추진기 자체가 선체 하부로 돌출돼 있다. 마치 프로펠러 비행기처럼. 게다가 방향타는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이 선박의 정체는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3월 러시아 국영 선사인 소브콤플롯으로부터 수주해 2016년 완공 예정인 세계 최초의 쇄빙 LNG선이다.
'얼음 깨는 LNG선' 위한 파드 프로펄서 시스템
시베리아 서쪽 야말반도에 위치한 천연가스전을 개발하는 야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발주된 이 선박은 최대 두께가 약 2.1m에 달하는 북극해의 얼음을 스스로 깨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인 선박의 틀을 깨는 특이한 추진 시스템을 장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이 공개한 야말 쇄빙 LNG선의 추진 시스템 사진(위)을 보면 세 개의 스크루 중 한 개는 정방향으로, 두 개는 역방향으로 돼 있다.
이 상태로 고정된 게 아니라 각각의 추진기가 360도 회전이 가능하다. 모두 정방향이 될 수도, 역방향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비스듬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방향타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추진기 자체를 회전시켜 전박의 방향을 전환하니 거추장스런 방향타가 있을 이유가 없다. 이른바 파드 프로펄서(POD Propulser) 시스템이다.
바다를 뒤덮은 두꺼운 얼음을 깨고 나가려면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많고 정밀한 방향전환도 필요하니 방향타 대신 파드 프로펄서 시스템을 적용한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저 작은 추진기 안에 어떻게 거대한 선박을 움직이는 엔진이 들어간단 말인가. 스크루가 360도 회전하도록 하려면 엔진을 선박 내부에 설치하고 기어를 통해 스크루에 동력을 전달하는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밀은 전기추진방식에 있다. 엔진이 선박 내부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엔진의 역할은 직접 동력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발전기를 돌리는 것이다. 발전기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전기모터로 전달돼 스크루를 구동한다. 돌출된 추진기의 불룩한 부분이 전기모터가 장착된 지점이다.
육상 가스 공급기지가 위험하다고? 바다에 띄우면 되지!
지난 2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는 세상에 없던 ‘LNG-FSRU’라는 설비가 탄생했다.
이 설비의 명칭을 풀어보면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로, 생긴 것은 선박이고, 실제 운항도 가능하지만, 조선업계에서는 선박이 아닌 ‘해양 플랜트’로 분류한다.
액체 상태의 천연가스(LNG)를 다시 기체 상태로 만들어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게 주 용도고, 이동은 부수적인 기능이니 ‘플랜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LNG-FSRU’가 탄생한 배경은 LNG 공급기지를 육상에 설치했을 때 발생하는 각종 번거로움과 비용 문제 때문이다.
어느 지역이건 불에 잘 타는 물질을 저장하는 설비가 자신이 사는 곳에 들어서는 걸 반기는 이들은 없다. 육상에 LNG 공급기지를 만들려면 당장 주민 반발부터 해결해야 한다.
또, 충분한 부지도 확보해야 하고, 부지 조성과 건설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상당하다.
요즘처럼 국제 정세나 에너지산업 트렌드에 따라 에너지 공급 루트가 수시로 바뀌는 시대에는 기껏 힘들게 만들어 놓은 LNG 공급기지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도 높다.
이같은 골칫거리들을 일거에 해소해 주는 게 바로 ‘LNG-FSRU’다. 이 설비는 해상에 띄워 놓고 사용되는 만큼 설치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불의의 사고시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 육상 LNG 공급기지에 비해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이 1년 정도 짧은데다, 부지 확보도 불필요한 만큼 건설비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설비를 담고 있는 몸체는 엄연한 ‘선박’인 만큼 기존 운영지역에서 불필요해지거나 다른 지역에서 더 활용도가 높아질 경우 곧바로 이동시킬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의 LNG-FSRU 역시 이같은 필요성 때문에 리투아니아에서 노르웨이 에너지업체 ‘회그LNG’를 통해 현대중공업에 건조를 의뢰한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에 의존해 오던 가스공급 경로를 다변화하기 위해 해상 LNG 공급기지를 필요로 했으며,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FSRU를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대우조선해양이 미국 에너지업체 ‘엑설레이트에너지’에 인도한 LNG-FSRU 역시 브라질 월드컵 기간 동안 일시적 전력 수요 급증에 대비해 발주된 선박이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벌크선이나 컨테이너선과 같이 용도가 단순하고 정형화된 범용 상선의 경우 자동차와 같이 조선업체가 기존 개발해 놓은 선형을 만들어 파는 식이지만, 가스선과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이나 LNG-FSRU와 같은 해양플랜트의 경우 선주가 요구하는 용도에 맞춰 새로운 선형이나 설비를 개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높은 인건비로 인해 범용 상선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국내 조선업체들로서는 고부가가치 선박과 해양플랜트 수주가 곧 생존의 방편이고, 계속해서 새로운 선주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며, “기존 선박의 틀을 깨는 제품들이 그동안 한국 조선업체들을 통해 등장해온 것도 그 때문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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