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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농군패션’ 이승엽의 350호 다운컷


입력 2013.06.15 09:27 수정 2013.06.15 09:31        데일리안 스포츠 = 이일동 기자

약 10년 만에 만루홈런 희열

슬럼프 탈출 위해 다운컷-농군패션

14일 NC전 만루홈런 터뜨린 이승엽 ⓒ 연합뉴스

강산이 바뀌고 다시 만루홈런, 그것도 프로야구 통산 350호의 값진 홈런이었다.

'라이언 킹' 이승엽(37·삼성)이 14일 창원 마산구장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NC와의 원정경기에서 역전 만루포를 쏘아 올렸다. 2-4로 뒤지던 5회초 1사 만루에서 NC 선발 찰리 쉬렉의 4구째 몸쪽 높은 직구를 잡아당겨 우측 담장을 넘기는 빨랫줄 홈런을 쏘아 올린 것.

지난 2003년 6월 22일 대구 SK전 이후 3645일 만에 터진 만루홈런이다. 정확하게 10년을 5일 앞두고 터진 의미 깊은 홈런이다. 일본서 활약하던 8년 동안 이승엽은 만루홈런의 맛은 보지 못했다. 이날 만루포로 이승엽은 양준혁(현 SBS 해설위원)이 보유한 역대 최다홈런 기록(351)에 불과 1개 차로 접근했다.

게다가 아홉수 징크스를 뛰어넘는 홈런을 만루포로 장식, 긴 타격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터닝 포인트를 잡게 됐다. 이날 이승엽은 만루홈런 외에도 8회 희생플라이로 1타점, 9회 우전 적시타로 타점을 추가하는 등 한 경기에서 무려 6타점을 쓸어 담았다.

사실 이승엽은 이날 경기 전까지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최근 극심한 타격 슬럼프로 스스로 타순 조정을 요구했지만 류중일 감독은 3번 타순에서 내리지 않았다. 스스로 그 타순에서 슬럼프에서 벗어나라는 방침이 이날 극적인 만루포로 연결된 것. 지난 2일 롯데전에서 시즌 4호포를 기록한 이후 12일 만에 본 짜릿한 손맛이다.

이승엽은 이날 2안타를 기록하고도 6월 월간 타율이 0.167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전날까지 31타수 4안타 타율 0.130에 불과했다. 일정상 4일의 휴식기간을 보낸 게 이승엽에겐 큰 힘이 됐다.


'농군 패션' 초심으로 돌아간 이승엽

휴식 이후 변화가 감지됐다. 바로 이승엽의 야구 양말이다. 이승엽은 타격 슬럼프에 빠지거나 심리적으로 집중이 안 될 때 양말로 변화를 꾀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삼성 시절에도 이승엽은 양말로 초심을 되찾곤 했다.

이승엽은 타격 스타일이 슬럼프가 다른 타자보다 길다. 슬럼프에 빠지면 오래 가는 타입이다. 슬럼프가 길어지거나 팀이 연패에 빠지면 이승엽은 농군 패션을 택하곤 했다. 일본 요미우리와 오릭스 시절도 마찬가지.

야구 양말을 하의 속으로 집어넣고 경기에 나섰던 이승엽은 NC전에서는 양말을 장딴지까지 올려 신는 소위 '농군 패션'으로 등장했다. 일반적으로 이승엽이 농군 패션을 선택할 땐 장타보단 정교함에 치중, 스윙이 간결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NC전에서도 예전과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두 번의 타석 모두 외야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컨텍에 비중을 두는 스윙을 구사했다. 결국, 세 번째 타석에서 이승엽은 쉬렉의 몸쪽 패스트볼을 간결한 스윙 메커니즘을 통해 이른바 찍어치기 타법(다운컷)으로 라인드라이브 만루포로 만들어 냈다.

이승엽은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최근 경기에서 찬스를 많이 놓쳤기 때문에 희생플라이라도 친다는 각오로 스윙을 했다"고 밝혔다.


희소성 있는 이승엽 '다운컷'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승엽이 친 홈런의 구질과 코스다.

이승엽의 약점은 국내 투수들에게 이미 노출돼 있다. 바로 몸쪽 높은 코스의 패스트볼이다. 파워 포지션은 몸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형성돼 있다. 56홈런을 치던 당시에도 홈플레이트에서 멀리 떨어져 바깥쪽 공을 밀고 당기는 타법을 구사했다. 몸쪽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승엽은 다운컷(Downcut)이 아니라 어퍼컷(Uppercut)을 구사하는 전형적인 장거리포 스타일이다. 높은 코스보다는 낮은 스트라이크존의 공을 걷어 올려 홈런을 터뜨리는 스타일이다. 즉, 이승엽의 최대 약점은 '몸쪽 높은' 공이다.

5월 월간 타율이 0.282나 됐던 이승엽이 6월 들어 1할대의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던 원인도 바로 몸쪽 승부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투수들이 이승엽의 강점인 바깥쪽 승부를 포기하고 떨어지는 유인구와 몸쪽 승부에 집중, 타격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쉬렉의 완벽하게 제구된 몸쪽 높은 공을 이승엽은 팔을 다 펴지 않고 배트 헤드만 빼서 홈런으로 연결시켰다. 이승엽의 스윙 메커니즘으로 볼 때 쉬렉이 던진 몸쪽 높은 공은 다운컷이 아니고선 장타를 만들어 내기 힘들다.

350호 만루홈런은 이승엽이 일반적으로 만들어 내는 스윙이 아니라 가장 빈도가 낮은 다운컷에서 홈런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이런 스윙은 장타 욕심을 버리고 컨택 위주의 스윙을 할 때만 나오는 이승엽 특유의 다운컷이다.

농군 패션을 택했다는 것은 이승엽이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외적 표현이다. 게다가 다운컷으로 홈런을 뽑아냈다는 점은 타석에서 장타 욕심을 버리고 컨택 위주의 타격을 구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나긴 슬럼프에서 탈출하기 위한 이승엽의 처절한 노력이 이 두 가지 변화에서 읽힌다.

이제 2개의 홈런을 더 뽑아내면 전인미답의 신기원을 밟게 될 이승엽. 농군 패션과 다운컷 두 옵션을 장착, 욕심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간 국민타자의 부활로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의 대기록은 카운트다운에 돌입하게 됐다.

이일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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