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中 국가신용등급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
中정부, 경기부양 위해 재정지출 대폭 늘리는 게 주요인
국가채무비율 작년 60.9%서 내년 78.2%까지 치솟을듯
트럼프 ‘관세폭탄’ 125%의 부과 효과는 반영 안 된 수치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18년 만에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이후 소비부진과 부동산시장 침체에 대응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면서 중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치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외화표시 장기채권 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한단계 낮췄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新華通訊), 로이터통신 등이 지난 5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중국은 한국(AA-)보다 신용등급이 두 단계 낮아졌다. 신용등급 A에 해당하는 나라는 일본을 비롯해 아이슬란드,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등이다.
피치는 앞서 2005년 중국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올린 데 이어 2007년 ‘A+’로 상향 조정했다. 이후 18년 동안 같은 신용등급을 유지해온 피치가 중국의 신용등급을 이번에 끌어내린 것이다. 피치는 지난해 8월 중국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꿔 하향 조정 가능성을 내비친 이후 1년도 안 돼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다만 중국의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경제성장과 재정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중국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고 피치는 배경을 설명했다.
피치는 이번 전망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발표하기 전에 이뤄진 것이라며 “중국이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디플레이션(물가하락)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출을 급격히 늘릴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신용등급을 끌어내린 주요인은 중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 곧 급증하고 있는 국가부채가 꼽힌다. 중국 정부는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로 설정했다. 중국은 통상 GDP 대비 3% 이내에서 재정적자를 관리해왔다. 그러나 올해 5% 안팎 성장을 목표로 내건 중국 정부는 침체에 빠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적자 비율을 4%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중국이 올해 재정적자 목표를 GDP의 4%로 설정했지만 피치는 지방정부 등을 포함한 중국의 확장 재정적자가 지난해 GDP의 6.5%에서 올해 GDP의 8.4%까지 급증 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같은 적자 규모는 ‘A’ 등급 국가들의 GDP 대비 재정적자 중앙값인 2.7%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피치는 “(이 수치는) A등급 국가의 평균 재정적자율인 GDP의 2.7%를 크게 초과한다”며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전부터 중국의 재정 전망은 이미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중국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지난해 60.9%에서 올해는 68.3%로, 내년에는 74.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재정 악화는 구조적 세입 감소와도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토지매각수입이 줄고 감세정책이 이어지면서 중국 재정수입은 2018년 GDP 대비 29%에서 2025년 21.3%까지 대폭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피치는 “이같은 구조적 요인 탓에 중국은 근본적 재정개혁 없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도 신용등급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피치는 올해 중국 성장률이 4.4%로 둔화하고 부동산 경기침체와 소비심리 위축, 미국의 관세폭탄 등 대내외 변수로 정부의 재정부양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과의 ‘관세전쟁’ 폭풍도 피해가기 어렵다. 이번 신용등급 조정에 트럼프 대통령이 2일 발표한 상호관세 효과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집권 이후 중국에 20% 추가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여기에다 상호관세 125%까지 더하면 트럼프 2기 때 관세는 무려 145%에 달한다.
지속적인 미국의 경제 압박으로 향후 성장 불확실성이 커진 점이 피치의 등급조정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피치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는 중국의 성장과 재정전망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중국이 추진 중인 외국인 투자자 대상 국채 발행에 차질이 빚어질 공산도 크다. 실제로 중국 국채의 부도위험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번 발표 직후 두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중국의 CDS프리미엄은 지난 2월17일 44.06bps(basis points·1bps=0.01%포인트)에 8일 82.59bps까지 급등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처음 발행에 성공한 녹색국채도 신용등급 강등으로 향후 발행 비용이 높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중국 채권시장 투자자가 대부분 국내 금융회사와 연기금 중심이라는 점에서 단기적 자금조달에는 큰 차질이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앨런 본 메렌 단스케은행 중국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국 채권시장은 자국 참여자들이 주도하고 있다”며 “중국은 저축률이 높고 저축액 중 대부분이 은행과 연기금을 통해 채권 시장으로 유입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도 지급준비율을 낮춰 정책을 더욱 완화하고 유동성을 늘릴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더라더 이를 매입할 충분한 자금이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민은행도 지급준비율을 낮춰 정책을 완화하고 유동성을 늘릴 예정이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이를 매입할 자금은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치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재정부는 피치의 등급 하향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편향적이고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등급 하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 경제가 견고한 성장 기반과 구조적 이점을 바탕으로 강한 회복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부는 또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5%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도 최근 중국의 2025년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4.6%, 4.5%로 상향 조정했다”고 반박했다. IMF는 올해 1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업데이트에서 중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경기 부양책을 반영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1%포인트 높인 4.6%로 제시했다.
중국 정부는 앞서 지난달 열린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하고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역대 최고인 4%로 제시해 적극적 재정 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내수부진과 부동산시장 침체 등으로 디플레 우려가 여전히 짙다. 물가 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는 2025년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소비자물가는 올해 말까지 0.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등급의 변화는 곧 국가의 차입 비용과 직결된다. 2011년 또 다른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당시 금융시장의 막대한 혼란을 초래했다.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정부와 기업의 차입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투자심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투자자가 투자를 줄일 것이다. 2011년 S&P가 최초로 미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당시엔 1주일여 동안 미 증시가 15% 폭락했다.
■ 용어설명
국가신용등급은 정부가 발행하는 장기 국채의 신용도를 의미한다. 경제성장률이나 잠재성장률, 공공부채, 외채, 외환보유액, 재정 건전성 등 여러 경제지표는 물론 정치적 안정성과 노동시장 유연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 비경제적 지표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신용등급을 부여한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