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성추문’에 침묵하지 않는 공연계…‘미투’ 그림자도 여전 [D:이슈]


입력 2025.04.12 14:16 수정 2025.04.12 14:17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최근 공연계에서는 과거 ‘미투(Me Too)’ 운동으로 성추문 논란에 휩싸였던 배우들의 복귀 시도가 대중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좌절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과거 잘못에 대한 대중의 엄격한 잣대 등 공연계의 자정 움직임 속에서도 새로운 성추문 의혹이 불거지며 여전히 ‘미투 그림자’가 짙게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8년 연극·뮤지컬 일반 관객들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한 공연계 미투(#MeToo) 운동을 지지하는 '연극뮤지컬관객 #WithYou 집회' 현장 ⓒ뉴시스

최근 연극 ‘헨리 8세’를 제작한 유라시아 셰익스피어 극단은 출연 배우였던 이명행의 하차를 발표했다. 이명행이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다는 것을 두고 네티즌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지난 2019년 1월 인천지방법원은 이명행을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8개월,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기관 3년 취업금지를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바 있다.


극단은 “저희는 절대 연극계의 성범죄를 비호하지 않는다”며 “상대방의 선의를 믿고 별도의 평판 조회 없이 함께 작업을 해왔다. 해당 인물의 전력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제보를 받은 즉시 사실관계 파악 후 하차 통보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전에 인사 검증을 철저하게 하지 못해 과거 용기를 내어주신 피해자분과 함께 싸워주신 연대자 분들께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에 앞서서도 지난해 대학로 공공극장 쿼드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던 연극 ‘두 메데아’는 개막을 코앞에 두고 전격 취소되는 사태도 있었다. 연극계 거물인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오랜 기간 추악한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난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연희단거리패 대표였던 배우와 스태프 등을 참여시킨 게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 김모씨의 무대 복귀에 비판적인 연극인과 관객들이 ‘두 메데아’를 제작한 극단과 공연장을 내준 서울문화재단 측에 강하게 항의하며 연극 보이콧 운동에 나선 영향이 컸다.


물론 경찰은 이윤택 수사 당시 김씨의 성폭력 방조 혐의에 대해 무혐의로 결론냈고, 김씨 역시 ‘두 메데아’ 보이콧으로 인한 공연 취소 사태가 일어나자 “저는 성폭력 조력자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글을 올렸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과거의 성추문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여전히 높으며,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복귀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명확하게 보여줬다.


문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존재하는 가운데에도 공연계 내 성추문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원로 배우 오영수가 과거 성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년이 구형됐고, 박근형 연출가가 재직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생을 성추행해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는 공연계의 뿌리 깊은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공연계의 폐쇄적인 구조와 권위적인 위계 문화를 지적한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과거의 잘못이 제대로 된 방식으로 청산되지 못하고,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부당한 행위들이 묵인되거나 은폐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가해자들은 쉽게 면죄부를 받거나 처벌을 피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다만 최근엔 공연계 내부에서도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 신호다. 한 연극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쉬쉬하며 덮어두기 급급했던 문제였는데, 최근엔 내부 고발이 이뤄지거나 피해자들이 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미투 운동 이후 높아진 사회적 감수성과 연대 의식이 이제야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남은 미투의 그림자를 완전히 걷어내고 건강한 공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과 엄격한 감시, 비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