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척은 어머니 쪽의 친척을 지칭하는 말이다. 보통은 외가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외삼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대부분은 포근함과 인자한 모습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외척이라는 말은 좀 더 복잡하고 엄중하다. 왕조국가에서 권력의 정점은 당연히 국왕이다. 그리고 국왕은 후계자를 둬야 때문에 반드시 혼인해야만 한다. 보통의 혼인은 당사자 간의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국왕의 혼인은 정치적인 행위라서 그것과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바로 국왕의 권력을 지탱해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국왕은 태생적으로 반역을 걱정해야만 한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신하와 친인척을 경계하고 때로는 숙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척들은 국왕과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에 배신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래서 역대로 많은 국왕이 외척들을 신중하게 골랐고, 많은 권력을 실어줬다. 외척은 국왕의 친척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 기반을 가진 채 폭주하거나 선을 넘기도 한다. 고구려 고국천왕때 연나부 소속의 중외대부를 지낸 패자 어비류와 평자 좌가려가 그런 케이스였다.
고구려는 다섯 개의 부족이 힘을 합쳐 세워진 부족연합 국가였다. 그래서 정복전쟁을 펼쳐서 국가가 확장된 이후에도 다섯 부족의 잔재가 남아있었다. 그중 연나부는 왕족인 계루부를 제외하고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왕후를 계속 배출했다. 고국천왕 역시 재위 2년차인 서기 180년 2월에 연나부로 추정되는 제나부 출신 우소의 딸을 왕후로 맞이한다. 2년차라고는 하지만 전해 12월에 즉위하고 2월에 혼인했으니 불과 3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혼인을 한 것이다.
우씨를 왕후로 맞이한 고국천왕은 한나라 요동태수가 이끄는 군대를 좌원에서 크게 격파하면서 침략을 막아내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중앙집권체제의 강화였다. 앞서 얘기한 대로 고구려는 다섯 개의 부족이 뭉쳐서 만든 국가였다. 정확하게는 왕을 배출한 계루부가 다른 부족들이 있는 압록강 유역으로 이주하면서 고구려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나머지 네 개 부족 역시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를 통치하는 임금들에게 각 부족이 가지고 있는 자치권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특히, 고구려가 정복 전쟁을 통해 한나라와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이라, 왕권을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손에 쥔 권력을 순순히 내어놓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투표와 임기라는 조항으로 권력의 사유화를 막는다. 하지만 선거와 임기 같은 게 없는 고대 왕조 국가에서는 결국 칼이 해결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기 190년, 고국천왕 재위 12년째 되던 해의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는 그런 충돌의 양상이 반란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대체로 누가 반란을 일으키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나오던 삼국사기의 반란 기록들 중에 발기의 난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긴 기록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왕후의 친척들이 권세를 믿고 거만하게 굴면서 나쁜 짓을 해서 왕이 죽이려고 하자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걸 어비류와 좌가려 입장에서 해석해 보자.
이들에게는 나쁜 짓이 아니라 원래 하던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우씨 왕후 때문에 권세를 부린 게 아니라 원래 연나부가 왕비를 배출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대개 권력자들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기 때문에 나쁜 짓의 기준은 대단히 애매모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외대부는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국상 다음가는 벼슬이며, 왕을 측근에서 모시는 직책이다. 그 정도 고위 대신을 고작 거만하고 노략질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그 누구라도 순순히 승복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반란을 일으켰다기 보다는 반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르겠다.
연나부의 반란은 다음 해인 서기 191년 4월에 마무리된다. 반년 넘게 지속된 반란이었는데 내내 치고받고 싸운 것인지 아니면 반란을 도모하고 준비했다가 4월에 연나부 세력을 결집해서 당시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을 공격했다가 고국천왕이 이끄는 진압군에 패배했을 수도 있다. 과정이 어쨌든 결과는 실패였다. 둘의 운명은 알려져있지 않지만, 고국천왕이 살려 둘리 없었을 것 같다. 그리고 연나부는 큰 타격을 받았고, 아마 다른 부족들도 왕의 눈치를 보면서 숨을 죽였을 것이다. 고국천왕은 그 여세를 몰아 서압록곡 좌물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을파소를 국상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반발하는 신하들과 왕실 사람들에게 그의 지시는 곧 나의 뜻이라면서 잘 따르라고 윽박지른다. 언뜻 보기에는 신하에게 힘을 실어주는 멋진 임금 같지만 실제로는 부족들의 힘을 억제하고 중앙권력을 강화하는 잔혹한 군주의 모습도 엿보인다. 그 와중에 죽은 어비류와 좌가려는 반항하면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였을 것이다.
정명섭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