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수입차 판매 부진… 8년만 역성장
법인 고가차 연두색 번호판 적용 효과
벤츠 S클래스 등 모델 체인지 시점 도래
'비싼 차 천국'으로 불리던 국내 시장에서 고가 수입차 판매가 8년 만에 역성장했다. 그간 법인 구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왔지만, 사적 남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연두색 번호판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법인 구매가 많던 주요 모델들의 모델 체인지 시점이 도래하며 '구매할 만한 모델'이 적어진 데 따른 것으로도 풀이된다.
2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1억원 이상 수입차 판매량은 6만2520대로, 전년 대비 무려 20.1% 줄었다. 고가 수입차의 전체 수입차 시장 점유율도 28.9%에서 23.7%로 감소했다.
수입차 시세도 하락했다. 최근 자동차 조사 전문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지난해 7월 실시한 연례 자동차 기획조사에 따르면,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수입 신차의 평균 구매 가격은 7593만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7848만원) 대비 255만원(약 3%) 감소한 금액으로, 수입차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16년 디젤게이트 파동 이후 처음이다.
국내 고가 수입차 시장은 경기 침체나 소비심리 하락과 관계없이 매년 성장세를 보여왔다. 고가 수입차 브랜드들에게 한국 시장은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이 많고, 부진 없이 럭셔리카 시장이 매년 성장하는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지난 3년 사이 롤스로이스, 벤틀리, 람보르기니 등 주요 럭셔리카 CEO들이 한국 시장을 앞다퉈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외 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던 판매량이 20% 이상 급감한 데에는 '연두색 번호판'이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연두색 번호판은 정부가 법인 차량의 사적 이용과 탈세 방지를 위해 지난해 1월부터 8000만원 이상의 법인 승용차에 부착하도록 시행한 조치다. 고가 차량이 법인 구매인지, 개인 구매인지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해 자발적으로 사적 남용을 방지하고자 했다.
초반에는 연두색 번호판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많았으나, 결과적으로는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연두색 번호판이 부착되는 것을 꺼려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초고가 럭셔리 차량들의 재고가 쌓였고,이에 8000만원대 수입차의 가격을 7000만원대로 낮추기도 하면서 수입차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연두색 번호판 조치가 시행된 초반만 하더라도 효과가 있겠냐는 의견이 많았고, 자동차 제조사들도 크게 문제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1년 시행 이후 수입차 판매가 크게 줄었다는 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한다"며 "고금리나 글로벌 경기 침체 등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경기 불황은 럭셔리 브랜드보다 대중브랜드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법인 구매가 많았던 주요 고가 모델들을 보면 더욱 두드러진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450 4MATIC L은 2023년 연간 2614대를 판매했지만, 지난해 1428대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S 500 4MATIC 역시 같은기간 3173대에서 1624대로, S 580 4MATIC도 1712대에서 649대로 줄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역시 마이바흐 GLS 600 4MATIC 모델이 987대에서 414대로, 마이바흐 S 580 4MATIC도 1278대에서 707대로, 마이바흐 S 680 4MATIC도 330대에서 151대로 반토막났다.
롤스로이스도 2023년 276대 판매했던 것에서 작년 183대 판매하며 33.7% 줄었고, 벤틀리 역시 810대에서 400대로 50.6% 급감해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포르쉐도 2023년 1만1355대를 판매하며 '1만대 클럽'에 입성했지만, 작년 8284대로 다시 내려왔다.
법인 구매 인기 모델들의 모델 체인지 시기가 임박한 데 따라 구매를 망설이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법인 구매가 절반을 훌쩍 넘는 벤츠 S클래스의 경우가 해당된다.
지난해 S클래스 모델 대부분의 판매량이 절반 가까이 하락한 반면 BMW 7시리즈의 경우 대부분 모델의 판매량이 두배 이상 올랐다. 740 xDrive 는 2023년 591대에서 작년 2463대로, 740d xDrive 역시 같은 기간 667대에서 1344대로 두배 이상 늘었다. 벤츠 S클래스는 7년 전 모델 체인지를 거친 이후 여전히 같은 모델로 판매하고 있는 반면, BMW 7시리즈는 지난 2022년 완전변경을 거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