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세계 최초' HBM4 12단 샘플 출하
6세대도 앞선 SK하이닉스, 삼성은 5세대 승인 대기
삼성전자 "HBM4에선 과오 되풀이 없다" 의지
같은 날, 젠슨 황 또다시 "삼성 공급망 참여 기대"
지난해 AI(인공지능) 반도체 전쟁에서 핵심 키 역할을 했던 HBM(고대역폭메모리) 전쟁이 다시 한번 예고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6세대 HBM4 12단 샘플을 출하하며 시장 선두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데, 삼성전자 역시 5세대 HBM3E와 다른 HBM4 시장 경쟁력을 보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동시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다시 한번 삼성을 언급하면서, 차세대 칩 전쟁 향방에 더욱 이목이 쏠린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는 19일(현지시간)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회의 'GTC 2025'가 개최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또다시 삼성전자를 언급했다. 아직 퀄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삼성의 5세대 HBM3E의 자사 공급 여부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공급망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이다.
젠슨 황은 전날 기조연설에서 올해 하반기 최신 AI 칩인 블랙웰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블랙웰 울트라를 시작으로 2028년까지 출시할 AI 칩 로드맵을 내놨다. 그는 블랙웰 울트라에 삼성의 5세대 HBM이 탑재될 가능성을 두고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베이스다이(Base Die·HBM 맨 아래 탑재되는 핵심 부품)에서 ASIC(맞춤형 칩)와 메모리를 결합하는 능력이 있다"고 짤막히 언급했다.
물론 지난 1월에도 비슷한 발언을 한 전례는 있다. CES 2025에서 삼성전자의 HBM과 관련해 "현재 테스트 중이며, 성공할 것이라 확신한다"면서도 "삼성은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번 발언을 두고도 지난번과 비슷한 수준의 원론적인 답변에 그친다는 관측도 크지만, SK하이닉스가 6세대 HBM4 12단 샘플을 최초로 공급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날 AI용 초고성능 D램 신제품인 HBM4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은 초당 2TB(테라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대역폭을 구현했다. HBM3를 시작으로 HBM3E 8단과 12단, 그리고 차세대 제품인 HBM4 12단에서도 '세계 최초'를 거머쥐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당초 계획보다 조기에 HBM4 12단 샘플을 출하해 고객사들과 인증 절차를 시작한다"며, "양산 준비 또한 하반기 내로 마무리해, 차세대 AI 메모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당 제품은 FHD(Full-HD)급 영화(5GB = 5기가바이트) 400편 이상 분량의 데이터를 1초 만에 처리하는 수준이다. 전세대(HBM3E) 대비 60% 이상 빨라졌다는 것이 SK하이닉스의 설명이다.
SK하이닉스의 HBM4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TC 2025에서 공개한 새 AI칩 '루빈'에 탑재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처럼 SK하이닉스가 차세대 제품에서도 다시 한번 속도를 내면서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 역시도 HBM4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마이크론은 내년에 해당 제품을 양산할 계획을 이미 밝힌 상태다.
SK하이닉스가 HBM4 샘플 공급 소식을 밝힌 19일 삼성전자도 제56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HBM 경쟁력'을 수차례 언급했다. HBM 초기 시장을 실기한 것과 관련해 주주들의 질의와 퀄테스트 통과 여부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삼성전자가 차세대 시장에서는 절대로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이날 "AI 경쟁력 시대에 HBM은 하나의 대표적 소자, 즉 부품인데 그 시장 트렌드를 저희가 늦게 읽는 바람에 초기 시장을 놓쳤다"며 "다만 지금은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조직 개편이나 모든 기술 개발에 적극 노력하고 있고 그 결과는 빠르면 올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턴 저희 HBM3E(5세대) 12단 제품이 시장서 분명 주목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외에 HBM4라든가 커스텀 HBM 같은 차세대 제품에서도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주주분들께 실망 드리지 않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HBM 사업에서도 좀 더 분발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이번에 내놓은 6세대의 경우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인 만큼, 다시 한번 SK하이닉스가 HBM4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젠슨 황이 이번 GTC 미디어 간담회에서 또 삼성을 언급하면서 시장 일각에선 HBM3E의 납품 시기가 임박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일단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하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한 뒤는, 차세대 제품에서 승부를 걸어볼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번 정기 주총에서 반도체 전문가 3명을 사내 및 사외 이사로 선임했다.
삼성 반도체를 본궤도에 올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전영현 DS부문장과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신임 사내이사로, 이혁재 서울대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전영현 부문장과 송재혁 CTO는 사내에서 '기술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혁재 교수의 경우 AI와 반도체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인물로, 현재 서울대에서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장과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