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비비탄'의 잃어버린 과녁 [D:쇼트 시네마(111)]


입력 2025.03.04 09:18 수정 2025.03.04 09:19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단동윤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예은(하보미 분)은 친구 다정(신아진 분)과 함께 남자친구 민혁(임태호 분)의 하굣길을 미행한다. 예은의 촉이 틀리지 않은 듯 민혁은 아파트 입구 앞에서 다른 여학생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다정은 당장 민혁에게 뛰어가려는 동생일지도 모르니 기다려보라 예은을 붙잡는다. 그 순간 민혁과 다른 여학생은 손을 맞잡는다. 남자친구의 바람을 목격한 예은은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하다 예은은 민혁이 비비탄을 맞아 실명될 뻔한 경험이 있다는 걸 떠올린다. 그렇게 복수의 도구는 장난감 총이 됐다.


오빠가 있는 다정이 총을 쏘는 배워와 예은에게 가르쳐 주면서 복수의 날을 잡는다. 민혁의 사진을 과녁 삼아 총을 쏘는 연습을 하던 중 예은은 다정에게 자세를 봐달라고 부탁한다. 예은에게 가까이 다가간 다정은 묘한 감정을 느낀다.


드디어 복수의 날, 장소는 미술실이다. 달리기가 빠른 민혁이기에 가둬놓고 비비탄을 마구 날릴 작정이다. 미술실로 민혁을 데려오기로 한 예은이 오지 않자 다정은 찾으러 나가고, 교실에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다. 다정이 전화를 하자 예은은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넣고 받지 않는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다정은 혼자서라도 민혁에게 비비탄을 날려보려 하지만 예은이 곁에서 함께 웃자 그냥 교실로 돌아온다. 혼자가 된 다정은 홀로 교실에 돌아와 비비탄을 날릴 뿐이다.


영화 '비비탄'은 친구 사이의 귀여운 복수 소동극처럼 시작하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감정의 결들이 촘촘히 엮여있다.


다정은 처음에는 친구의 복수를 돕는 조력자처럼 보이지만, 예은을 향한 감정이 단순한 우정 이상임을 암시한다. 다정이 품은 감정으로 예은은 자신도 모른 채 배신자가 됐다. 두 사람을 향해 비비탄을 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다정은 허공에 총을 쏘며 감정의 방향을 잃어버리는데, 여기서 비비탄은 복수의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다정의 혼란을 상징한다.


단동윤 감독은 예은과 다정의 감정을 클로즈업을 통해 세심하게 포착하며, 퀴어 서사를 담아냈다.


사랑과 우정, 배신과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비비탄이라는 독특한 장치를 통해 전달한 재치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15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