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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말리는 공항' '한화갑 공항'의 예견된 참사?


입력 2024.12.30 14:36 수정 2024.12.30 14:53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지난 2007년 개항 무안공항…연간 992만 명 이용 예측됐지만 지난해 이용객 24만6000명 불과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으로 설계됐지만 활주로 약 2.8km…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은 편

'조류 충돌' 문제에 대한 안일한 인식도 사고 키웠다는 지적…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가까워

인천국제공항 제외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비율 가장 높아…비행기 1만편 오갈 때 9번 발생

지난 29일 오전 전남 무안군 무안공항에서 승객 175명을 태운 여객기가 추락해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항공기 고장 외에도 짧은 활주로 길이, 공항 건설 초기부터 지적된 조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인식 부족, 미숙한 공항 운영 경험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고추 말리는 공항' '한화갑 공항'으로 불리며 정치 공항으로 설계된 무안공항의 태생과 맞물려 있다는 견해도 있다. 건설 전 연간 992만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던 무안공항의 지난해 이용객은 24만6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2007년 개항한 무안공항은 서남권 거점 국제공항으로 설계됐지만, 활주로는 약 2.8km로 다른 주요 국제공항보다 짧은 편이다. 이에 전남도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활주로 길이를 3.126㎞로 늘리는 연장 공사를 진행 중이었고, 이 공사 탓에 무안공항 활주로는 300m가량 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실제 이용 가능한 거리는 2.5㎞였던 셈이다.


활주로는 비행기가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 추진력을 얻는 공간으로, 대형 항공기 이용이 잦은 국제공항 대부분은 활주로 길이가 3㎞를 넘는다. 실제 국내의 주요 국제공항인 인천국제공항(3.75㎞), 김포국제공항(3.6㎞), 김해국제공항(3.2㎞), 제주국제공항(3.2㎞)등은 무안공항보다 활주로 길이가 길다. 미국 JFK, 프랑스 샤를 드골, 도쿄 나리타 등 주요 국제공항 활주로는 4㎞가 넘는 곳도 많다. 무안공항에서 400t 넘는 항공기 운항이 제한된 것도 활주로 길이가 짧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전문가들은 활주로 길이가 길수록 제동력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항공기는 바퀴 대신 동체착륙을 시도하던 중 속도를 제대로 줄이지 못해 활주로 끝 둔덕 등에 부딪혔다. 김규환 한국공항공사 항공훈련센터 센터장은 "3㎞에 미치지 못하는 활주로 길이는 평시 이착륙 상황에선 문제가 없지만, 동체착륙 같은 비상시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 원장은 "사고의 주요 원인을 활주로 길이로만 돌리긴 어렵지만, 활주로 길이가 인천 정도로 길었더라면 이 정도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다만, 이날 국토부는 "활주로 길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고 기종은 1.5~1.6㎞ 길이의 활주로에서도 착륙할 수 있다"고 했다.


ⓒ뉴시스

사고 원인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문제에 대한 안일한 인식도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 착륙 장치 '랜딩기어' 고장이 조류 충돌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무안공항은 서해안 철새 도래지와 가까운 곳이어서 공항 건설 초기부터 관련 문제가 제기돼 왔다. 무안공항 인근의 전남 무안군 현경면·운남면에선 1만2000여 마리의 겨울 철새가 관찰됐다. 이 지역에는 113.34㎢에 이르는 대규모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 등이 조성돼 있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무안국제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때도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2020년 당시 보고서는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조류 충돌 위험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저감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고 적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폭음기나 경보기를 설치하고, 레이저나 깃발, LED 조명 등을 이용해 조류 충돌을 최소화하라는 구체적 대응책까지 제시했지만, 활주로 확장 사업이 완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무안공항은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 중 조류 충돌 비율이 가장 높다.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무안공항에는 여객·화물을 합쳐 항공기 총 1만1004편이 오갔는데, 이 기간 모두 10건의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운항 횟수 대비 조류 충돌 발생 비율은 0.09%로, 비행기가 1만편 오갈 때 조류 충돌이 9번 발생했다는 뜻이다. 제주공항(0.013%), 김포공항(0.018%) 등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무안공항엔 조류충돌예방위원회가 만들어져 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안공항 관제탑 등 항공 관계자들의 경험 부족이 사고를 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무안공항은 이달 전까지 국제선 정규 노선을 운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9일 사고가 발생한 무안~방콕 노선은 제주항공이 이달 8일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무안공항이 17년 만에 운영하는 첫 국제선 정기 노선이다. 또 무안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4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이 뒤늦게 사표를 낸 이후, 8개월째 공석이다. 한 전직 기장은 "항공기의 조류 충돌 주의 경고 후 2분 만에 '메이 데이' 선언이 있었다"며 "매우 급박했던 상태인데 이 과정에서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동체착륙 외 다른 선택지를 택하는 건 불가능했는지 등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항공기 동체착륙 전엔 공항소방대가 와 대기한 뒤, 활주로에 화재 방지를 위한 소화 약제를 뿌렸어야 하는데 이같은 절차도 시행되지 않았다.

황기현 기자 (kihyun@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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