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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마음에 훈훈한 난로 들이는 영화 [다시 보는 명대사⑯]


입력 2024.12.30 06:42 수정 2024.12.30 08:2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막다른 길, 다음 발길을 어디로 내딛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영화 ‘오랜만이다’ 포스터

여러모로 추운 2024년 12월이다. 출구를 찾기 어려운 이때, 찬 바람 부는 마음에 따뜻한 난로 들여주는 영화가 있다. ‘오랜만이다’(감독 이은정, 제작 ㈜필름모멘텀, 배급 ㈜블루필름웍스).


‘오랜만이다’는 ‘변산’(감독 이준익, 2018)처럼 세상살이에서 받은 상처를 고향과 추억이 치료해 주는 청춘영화이기도 하고, ‘미드나잇 선’(감독 스콧 스피어, 2018)처럼 여자주인공의 맑은 음색과 잔잔한 노래가 귓전에 맴도는 음악영화이기도 하고, ‘오만과 편견’(감독 조 라이트, 2006)처럼 주인공들의 미묘한 감정과 사소한 오해가 사랑의 방해물이 되는 로맨스영화이기도 하다. 셋 모두를 느껴도 좋고, 관객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장르에 무게를 두어 즐겨도 좋다.


30분 이내의 단편 ‘깁스를 한 남자’ ‘미라의 의지’ ‘치욕일기’를 연출했던 이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데, 욕심내지 않고 겁먹지도 않고 차분하게 완성했다.


배우 박종환, 수봉 역 ⓒ영화 ‘깁스를 한 남자’ 스틸컷

배우들이 큰 역할을 해주었는데, 감독의 연출 데뷔작 ‘깁스를 한 남자’에서 제목 그대로 깁스했던 배우 박종환이 ‘허리우드 악기’ 사장 수봉으로 출연해 주인공들을 비롯해 여러 캐릭터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제대로 했다. 음률이 느껴지는 박종환의 대사를 듣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데, 기타도 건반도 치는 뮤지션으로 악기사를 운영하는 인물이자 밴드가 있는 펍(Pub, 주점) 사장 역에 박자를 당겼다 늘였다 맛있게 발화하는 박종환을 캐스팅한 건 제격이다.


‘치욕일기’의 박주희는 여자주인공 연경(방민아 분)의 언니 윤경으로 분해 화끈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연경 엄마 역의 라미란과 아빠 역의 김학선, 연경 담임선생님 역의 양조아, 연경의 선배 민정 역의 공민정, 남자주인공 현수(이가섭 분)의 엄마 역 박성연 등은 잠깐을 나와도 극을 힘 있게 받친다. 감독의 전작 주인공들이 나오다 보니 ‘미라의 의지’ 안재홍을 기다려보는 재미도 있다.


배우 방민아, 연경 역 ⓒ영화 ‘오랜만이다’ 예고편 화면 갈무리
맑고 밝은 미소가 매력, 방민아 ⓒ영화 ‘오랜만이다’ 예고편 화면 갈무리

당연히 가장 큰 공은 주연 배우에게 있다.


영화 ‘미드나잇 선’이 가수이자 배우인 벨라 손에게 크게 기대었듯, 영화 ‘오랜만이다’ 역시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에서 배우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는 방민아의 노래와 연기가 있어 가능했다. 안성맞춤 캐스팅이다. 걸그룹이 아니라 솔로로 데뷔하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하는, 가창력을 뽐낸다. 연경의 고3 시절과 서른셋의 나이를 동시에 소화하기에 무리 없는 외모도 한몫한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는 고교생 연기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쓸쓸함이 묻어나는 30대 연기는 배우 방민아의 성장을 확인시킨다.


배우 이가섭, 현수 역 ⓒ영화 ‘오랜만이다’ 예고편 화면 갈무리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 자폐가 있는 현수오, 잘나가는 쌍둥이 동생 건오, 1인 2역으로 무서운 연기력을 과시한 배우 이가섭은 ‘오랜만이다’에서 깨끗한 백지 같은 연기를 선보인다. 조용하고, 움직임이 적어서 더욱 집중하게 하는 힘을 보여준다. 마음속에서 꺼내지 못한 첫사랑의 아림과 안타까움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연기 색이다. 현수라는 인물이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데다 대사량이 적어 자칫 답답하게 느껴지거나 비호감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데, 배우 이가섭의 매력으로 캐릭터의 진심이 전해진다.


이렇게 기본을 갖춘 영화에서 명대사를 만나면, 그 길이가 짧다고 해도 마음 깊숙이 다가선다. 영화 ‘오랜만이다’에서 만난 명대사는


“진짜 좋아하는 걸 알게 되면 용기가 생길 거야!”


이다. 내신 7등급, 수능 6등급의 고3 연경이 전교 1등, 서울대 의대생이 될 현수에게 해주는 말이자 후일 서른셋 현수가 연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기시키는 말이다.


시작하지 못한 연인들을 위하여 ⓒ영화 ‘오랜만이다’ 예고편 화면 갈무리

세밑이 되면 새해 무엇을 할지,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될 새로운 한 해를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심사숙고하는 우리가 있다. 새해 필요한 일보다 진짜 좋아하는 일을 ‘새해 계획’에 넣어 보는 건 어떨까. 진짜 좋아하는 걸 찾는 한 해이어도 좋겠다.


필요한 일을 놓쳐 남에게 뒤처질까 벌써 겁이 난다고? 진짜 좋아하는 일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다. 내게 만일 용기가 생긴다면, 그건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인 거다. 그게 무엇일지는 나만이 안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수백억, 수천억 원 들인 영화나 드라마만이 관객과 시청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영화 ‘오랜만이다’에서 연경이 부르는 노래 ‘무지개’의 가사처럼, 역사극도 스릴러도 멜로영화도 각자의 색으로 모두가 빛나는 연말연시이기를 희망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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