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자영업자 위한다지만
일방적 조정 10년 넘게 이어져
회사 실적도 '발목' 잡히겠지만
고객에까지 장기적 악영향 우려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둘러싸고 잡음이 일고 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일방적인 수수료 조정이 10년 넘게 계속되면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같은 수수료 인하가 물론 카드사 실적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이대로라면 소비자에게까지 장기적으로 피해가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양대 금융권 산별노조(금융산업노조·사무금융서비스노조)와 카드사노동조합협의회는 19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카드 수수료 인하 포퓰리즘 중단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2025년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에 발표한 개편안으로 약 304만6000개 가맹점은 평균 8.7%, 약 178만6000개의 영세·중소 PG하위사업자는 평균 9.3%의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은 카드수수료 적격비용을 산정한 결과 카드업계의 영세·중소가맹점에 대한 카드수수료 부담경감 가능 금액은 연간 약 3000억원으로 계산했다.
적격비용은 신용카드의 ▲자금조달 비용 ▲대손비용 ▲일반관리비용 ▲VAN사 승인·정산 비용 ▲마케팅 비용 등을 포함해 산출된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카드사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적격비용 산정 결과 연간 수수료 부담 경감 가능액은 3000억 규모로 분석됐다"며 "최근 전반적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카드수수료 개편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이 인하여력을 연 매출 30억원 이하, 약 305만 영세·중소가맹점에 고르게 배분하는 방향으로 우대수수료율을 개편했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 수수료는 ▲연매출 3억원 이하 0.50%→0.40% ▲연매출 3억~5억원 1.10%→1.00% ▲연매출 5억~10억원 1.25%→1.15% ▲연매출 10억~30억원 1.50%→1.45%로 각각 인하된다.
아울러 현재 3년마다 이뤄지는 적격비용 재산정주기는 6년으로 조정했다. 다만 대내외 경제여건,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카드사의 영업·경영상황 등을 3년마다 점검해 적격비용 재산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적격비용을 재산정 할 수 있게 했다. 이번에 개편된 수수료는 내년 2월 14일부터 적용된다.
카드업계는 이번 수수료 개편안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으로 적격비용에 기반한 카드수수료율 산정과 영세·중소가맹점 우대수수료율 체계가 도입된 이후 금융위는 3년에 한 번 적격비용을 재산정하고 영세·중소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을 결정해왔다.
문제는 금융위가 적격비용 재산정 때마다 가맹점 수수료율을 줄곧 내렸다는 점이다. 매 주기마다 수수료가 내려감에 따라 이미 카드사들은 본업인 신용판매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호걸 금융산업노조 사무청장은 "금융위는 때만 되면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도 밝히지도 않은 채 수수료 인하에 앞장서고 있다"며 "일방적 정책 발표는 연회비 인상과 무이자할부 혜택 축소, 혜자카드 단종 등 카드사와 소비자 모두 피해 보는 상황을 자처한다"고 말했다.
임동근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도 "금융위는 영세 소상공인 지원을 목적으로 카드 수수료 인하가 필요하다 외쳤지만 이미 전체 카드 가맹점 96%는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받고 있는 현실"이라며 "연 매출 10억원 미만 가맹점의 경우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세액 공제를 포함하면 카드 수수료는 마이너스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신용카드 등 매출세액 공제제도'를 감안하면 연매출 10억원 이하의 영세·중소가맹점까지는 대부분 신용카드 수납에 따른 카드수수료 부담 보다 공제받는 금액이 더 큰 상황이다.
신용카드 등 매출세액 공제제도는 오는 2026년까지 연매출액 10억원 이하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신용·체크카드, 현금영수증 등 매출액의 1.3%를 부가가치세액에서 공제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이미 영세·중소가맹점에서의 신용판매 부문에서 적자를 보고 있었는데, 이번 인하로 적자가 더욱 심화될 전망"이라며 "기존 카드 상품들에 대한 손익 계산도 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달라져 혜택이 좋은 카드의 경우 단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이번 선택은 내수 회복 분위기를 깨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 경기침체가 이어져 내수 소비를 늘려야 하는 상황에 정부의 카드수수료 인하 개편안 발표는 소비진작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며 "적자의 늪에 빠진 카드사는 소비자의 혜택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인력 구조조정도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물론 금융당국이 적격비용을 기존 3년에서 6년으로 늘린다고 했지만, 지금과 달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라며 "정치적인 표 계산에 카드사가 희생된 꼴"이라고 질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