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일 전공의에 대한 사직서 수리 금지와 업무개시명령 철회…재취업의 길 열려
수련기간 채우지 못해 전문의 응시자격 갖추지 못한 전공의 구제책도 마련
전공의들 "필수의료 패키지도 결국 전공의 희생 전제로 한 것…이젠 뭐라고 지껄이든 안 궁금"
"전공의들 하루라도 더 착취할 생각밖에 없어…달라진 것 없고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것"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의료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에 대해 사직서를 수리하고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하는 등 이른바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2월 20일 이후 100일 넘게 자리를 비운 전공의들이 곧바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공의들의 복귀 요건 중 가장 핵심이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였는데 증원이 이미 확정된 이상 전공의들이 돌아올 명분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전공의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며 재취업의 길을 열어준 만큼 이들이 의사의 길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결국에는 병원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병원장에게 내린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과 전공의에게 부과한 진료유지명령, 업무개시명령을 오늘부로 철회한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이 개별 의향에 따라 복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조 장관은 명령 철회를 두고 "환자와 국민, 그리고 의료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진료 공백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내린 결단"이라며 "오늘부터 각 병원장께서는 전공의의 개별 의사를 확인해 복귀하도록 상담·설득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발표는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 확정된 상황에서 전공의 대상 강경책을 유지할 실익이 없어졌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정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위해서도 전공의들의 복귀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유화책에도 전공의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가장 핵심적인 요구조건인 '의대 증원 백지화' 없이는 복귀하지 않겠다는 것이 상당수 전공의들의 입장이라서 당분간 전공의 공백사태는 더 이어질 전망이다.
◇ 당장 개업할 수 없는 전공의만 1만여 명…정부, 일부 수련병원 복귀 기대
정부가 이날 병원장들을 대상으로 사직서 수리를 허용한다고 밝힌 것은 전공의들에게 다른 병원으로서의 재취업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근무하던 수련병원에서는 사직했지만 다른 수련병원에 전공의로 들어갈 수도 있고, 개업의에게 봉급을 받는 일반의로 재취업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정부는 전공의가 이번 조치로 사직을 하더라도 상당수가 다른 수련병원으로 가 수련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전공의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빅5'(서울 주요 5대 병원)의 빈자리를 사직 전공의들이 채운다면 중증·응급 환자들이 몰리는 이들 병원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다.
정부는 사직서 허용 및 업무개시명령 철회 등 이날 발표한 유화책으로 이탈 전공의의 50% 이상이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식적인 목표치는 없지만 절반 넘게 돌아오길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복귀가 늘어나면 전공의 부재로 도산 위기에 봉착한 병원들의 경영 상태도 상당부분 호전될 수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을 메우고자 운영 중인 비상진료체계에 7500여억원의 건강보험 재정과 2000억원에 가까운 예비비를 쏟아부어 왔는데, 전공의들의 복귀가 이런 비용 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 전공의들 "그래도 안 돌아간다…필수의료 패키지는 전공의 착취가 핵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복귀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 대세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시끄럽게 떠들지만 말고 업무개시명령부터 철회하든 행정처분을 내리든 해달라"며 "사실 이제는 뭐라고 지껄이든 궁금하지도 않다. 전공의들 하루라도 더 착취할 생각밖에 없을 텐데. 달라진 건 없다. 응급실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남겼다.
다른 전공의들도 대체로 복귀하지 않겠다는 뜻을 굳힌 가운데 복귀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큰 필수의료는 기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수련하던 전공의는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는 결국 전공의들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동될 수 있는 정책"이라며 "의료수가는 찔끔 인상해주면서 그런 착취의 현장으로 스스로 들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차라리 전문의 자격 취득을 포기하고 일반의 자격으로 개원가에 취업하겠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의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는 "정부가 사직서를 수리한다고 해 잘 됐다고 생각한다"며 "전공인 내과는 살리면 살릴수록 소송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사직서가 수리되면 통증클리닉 쪽으로 취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의협·의대교수 총파업 논의 '변수'…정부, 대대적 지원으로 전공의 달랜다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복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대 교수들도 총파업 논의에 들어가 향후 의정(醫政) 갈등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지난달 30일 전국 동시 촛불집회에서 임현택 회장이 '6월 큰 싸움'을 예고한 의협은 이날부터 7일까지 전 회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벌인다. 2020년 증원 추진 당시 개원의 총파업의 참여율이 10%에 못 미쳐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났지만, 강경파 임 회장이 이끄는 의협은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정부에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전체 교수들이 참여하는 총회를 열고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을 제외한 진료를 전면 중단하는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이 학교 교수들은 정부의 행정처분이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 다른 의대 교수들의 단체에서는 아직 총파업 등을 계획하지는 않고 있으나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나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언제든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유화책도 발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의료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인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논의하고, 의료체계 정상화를 위한 투자도 병행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또 전공의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고자 2026년 법 시행에 앞서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도 시작했다. 그동안 전공의들을 대거 활용해온 병원들은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해 전공의들이 수련에 더 집중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전병왕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전공의 단체에서 요구사항으로 제시한 7가지 중 의대 증원 전면 백지화 등을 제외한 제도적 개선 사항은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조속한 복귀를 재차 촉구했다. 또 수련기간을 채우지 못해 전문의 응시자격을 갖추지 못한 전공의들에 대한 구제책도 내놨다.
전 실장은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내년 1월에 같이 시험을 치는 방법이 있고 그러면 추가 수련 기간을 다 채우지는 못했으니까 시험은 치고 나머지 추가 수련을 하는, 그리고 그때 합격하면 면허를 발급하는 방법이 있다"며 "그 부분이 곤란하면 추가 시험을 통해서 한 번 더 전문의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해서 복귀한 전공의들은 제때 같은 해에 전문의 면허를 받을 수 있도록 이렇게 해 주겠다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험을 치고 하든 아니면 다 기간을 수료하고 추가 시험을 치든 기존에 계속 3월부터 수련을 받은 전공의 3년차, 4년차 내년 1월에 시험을 칠 수 있는 그런 전공의들은 기존대로 시험을 칠 수 있다"며 "나머지 이탈했던 전공의분들은 이탈한 기간만큼은 다시 추가 수련을 2월까지는 본 수련하고 나머지는 소위 말해서 결석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이후에 추가 수련을 해야 된다. 그 차이가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