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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욱의 야단법석(野壇法席)] 한동훈 울어라, 그 옛날 박근혜 보다 더 울어라


입력 2024.04.03 01:02 수정 2024.05.06 20:05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尹대통령 의대증원 대국민담화, 결과·대책 없이 독불장군식 결기만 내보여…총선에 악영향

'정권심판론' 쓰나미에 범야권 과반 이상 확보 확실…진영 생존 위한 최소한의 표라도 달라고 빌어야

박근혜가 울어야 몰표 나오지 한동훈이 운다고 무슨 효과?…더 진심으로 더 간곡하게 읍소해야

패배하더라도 일할 수 있는 밑천 정도는 손에 쥐어 줘야…국민들의 절묘한 균형감각에 다시 한 번 의탁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의대증원 관련 대국민담화를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 입장한 후 인사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증원 대국민담화를 보면서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도 설사 내가 탄핵을 당하더라도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기에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고 버텼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애써 잃으면서까지 독불장군식 마이 웨이를 가는 모습이 얼핏 닮기도 했다. 그런데 한미 자유무역협정 혹은 이라크 파병 같은 문제와 의대 증원이 같은 급인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담화를 보면서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이기긴 힘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실 국민 대다수가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말은 틀린 게 없다. 그런데도 왜 표 떨어진다고 아우성을 쳤을까. 국민들에게 무한 책임을 지는 대통령은 결과를 가지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 기약도 없는 불편함에 대책 없이 결기만 내보이니 무능해 보였던 것일까. 숫자에 여지를 두며 대통령이 전공의들을 만나겠다고는 하지만 의료계가 워낙 강경해 파투(破鬪) 가능성은 여전하다. 국민적 지지는 물론, 야권도 찬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 맛깔스러운 소재가 여권을 이토록 무기력하게 몰아갈 줄은 몰랐다.


이왕 마이크 잡은 김에 “물가 관리는 정말 유감이다” 정도는 언급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있으나마나한 용산의 참모들 때문인지 간언(諫言)을 해도 소리만 지르는 대통령 때문인지 볼 수가 없었다. 담화가 끝난 후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의 반응만 보면 이제 당정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듯하다. 약속대련이 아니라면 이미 같은 편이 아니다. 2016년 김무성의 옥쇄파동도 어른거린다. 그래도 벌써 대통령 탈당 요구는 너무 했다. 아직은 “모든 게 우리가 잘못 모셔서 이렇게 된 것이다”라고 하소연 할 때이다.


여권의 총체적 파열음 속에 범야권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가는 것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들이 180석 이상을 얻으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각종 특검법 등 어떤 법안도 여당 없이 통과시킬 수 있다. 심심하면 야유하듯이 흘리고 있는 200석 이상을 실제로 확보하면 대통령 탄핵안 발의 시 의결정족수를 충족하게 되고 독자적인 개헌도 가능하다. 윤석열 정부는 완전히 입법주도권을 빼앗기면서 남은 3년을 지금보다도 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로 연명해야 한다.


사실 선거에서는 그 어떤 전략도 ‘정권심판론’ 쓰나미를 넘어설 수 없다. 이건 제대로 발동되면 이른바 ‘담요 효과’로 모든 이슈와 쟁점, 정책을 일거에 다 덮어버린다. 국회의사당 아니라 용산을 옮겨간다고 했어도 고척돔에 오타니 온 것만큼의 관심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크면 결혼하자처럼 말하고 나서도 한참 있다가 지켜질 먼 약속에 유권자들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더욱이 이 사안은 개헌논쟁 재연 우려를 야기하는 등 실현 가능성을 놓고 벌써부터 의견이 분분하지 않은가.


전관범죄와 꼼수증여, 편법대출, 위안부 망언 등 야당 후보들의 공천 잡음이 막판까지 끊이지 않는 것은 분명 호재이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때늦은 잡도리로 표를 좀 빼앗아 올 수는 있겠으나 승부를 뒤집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우리 뽑아주면 뭐 하겠다든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겠으니 일단 우리를 뽑아만 달라는 식은 이제 부질없다. 너무 늦었다. 무조건 잘못했으니, 그래도 나라 전체를 다 시퍼렇게 물들일 수는 없으니, 진영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표만이라도 달라고 엎드려 비는 수밖에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일 충남 당진전통시장 앞에서 정용선(충남 당진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여, 막바지 여권의 읍소전략은 나쁘지 않다. 징징거리기만 한다고 이죽거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만큼 절실하다는 것이다. 지난 20년만 봐도 여러 번 통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악어의 눈물에, 엄살에 속으면 안 된다며 국민을 상대로 직접 대놓고 기만행위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힐난하던데, 대한민국 사람 다 그렇게 말할 수 있어도 이 대표가 할 소리는 아니다.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그 모든 말과 소리를 이 대표만큼 상스럽고 거짓으로 만들 수 있는 정치인은 이 땅에 없다.


지난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의 총선처럼 우는 것도 박근혜가 울어야 할매들도 같이 울며 몰표를 던지지 한동훈이 운다고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면박도 주지만 그럼 더 울면 된다. 한동훈이 더 진심으로 더 간곡하게 국민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더 울면 된다.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정치는 민심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구걸하는 행위이다. 이미 상대진영의 스피커들이 하루 종일 오만 군데에서 낄낄거리며 씹어대고 난도질하고 있는 마당에 더 감출 것도 더 미룰 것도 없다. 다만 대통령과 더 이상 각은 세우지 말라. 영남이 흔들릴 수 있다. 누가 뭐래도 좌천돼 전국의 장돌뱅이로 유랑하던 검사 한동훈을 법무장관 시켜주고 여당의 수장으로 세운 사람이 지금의 대통령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누가 더 못했는가’를 따지는 싸움이다. 누가 잡고 누가 하든 항상 50점을 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은 늘 고단했다. 궁극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 결국 이 나라에서 정치는 희망고문 같은 것이고 날씨 같은 기분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범죄자들이 나라를 접수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국격(國格)이 염려된다. 트럼프가 다시 미국을 점령해도 뭐라고 못할 것 같다. 패배를 안기더라도 일할 수 있는 밑천 정도는 손에 쥐어 줘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총선이 끝나면 이제 민주당은 없다. 이재명 개인 사당만 남는다. 지난해 9월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그 어떤 공구리를 치더라도 이재명당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고 피의 수요일(3월13일) 도륙공천을 통해 기어이 그 서원(誓願)을 달성했다. 사실 이재명이 민주당의 유산이나 자산과 무슨 관련이 있나? 어딜 봐야 서민·중산층의 정당과 권위주의를 내려놓은 사람 사는 세상을 엿볼 수 있나? 아무리 봐도 미친 듯이 왼쪽으로 더 달려갔을 뿐이다. 진영을 떠나 비명횡사 공천만큼은 꼭 심판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회 들렀다 감옥가기로 했으면 본인이나 그럴 일이지 비슷한 처지의 비리혐의 인사들만 비례 배정으로 솎아낸 조국 대표도 제 값을 치러야 한다. 언제 또 볼지 모를 벚꽃이나 보다 보면 거품 빠지는 소리가 조금씩 들릴 것이다. 눈만 뜨면 진영 곳곳에서 개헌저지선인 100석도 안 될 것이라는 낙담과 비탄이 쉼 없이 교차한다. 전전긍긍 망연자실 정말 어쩔 줄을 모른다. 하늘도 감동시키는 국민들의 절묘한 균형감각을 아직 잘 몰라서 그렇다. 다시 한 번 머리를 조아리고 의탁할 뿐이다.


양창욱 기자 (wook141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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