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영입인재' 박충권 현대제철 책임연구원
탈북민 출신 공학도…평양국방대 다니며 北 현실
모두 목격 "약점 정밀히 분석해 효과적 공략해야"
"사회주의 경도된 운동권 특권 정치, 이젠 끝내야"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던 1995년 '베이징 발언'으로부터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 우리 정치는 4류에서 랭크가 올랐을까. '헌정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21대 국회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기대마저 내려놓았다는 국민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 정치는 22대 총선을 통해 '4류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정치로 나아갈 수 있을까. 데일리안은 '4류 정치 청산'을 주제로 하는 연속 인터뷰를 통해 그 길을 찾아본다. 마흔 여섯 번째 순서로 국민의힘에 국민인재로 영입된 박충권 현대제철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사람들은 제각각 인생 스토리를 하나씩 품고 산다. 그 스토리의 핵심요소는 주로 자신이 겪었던 가장 힘들었던 일이나, 가장 성취감이 높았던 일화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박충권 연구원이 꺼낸 스토리에는 미칠 수가 없다. 그는 지난 2009년 북한을 탈출해 우리나라로 넘어온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느 탈북 스토리가 그러하듯 박 연구원이 겪은 얘기 역시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박 연구원은 1986년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땐 열심히 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해 북한에서도 엘리트만 간다는 평양 김정은국방종합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화학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박 연구원은 북한 대량살상무기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과정에 관여했다. 그런 그의 앞에는 북한에서의 탄탄대로가 깔려있었다.
'위선' 박 연구원이 북한을 한 마디로 표현한 단어다. 그는 북한이 위선으로 가득한 곳인 걸 깨달았고 이런 곳에선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배경은 이랬다. 박 연구원은 국방대학을 다니며 '학생 간부'를 맡아 학생들을 통제·개도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다보니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의 체제를 알리고 고취시키는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북한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었다. 이 의문은 곧 회의감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그는 굉장히 깊은 고뇌에 빠졌다. 김정일이 직접 쓴 사회주의와 관련한 논문도 2개나 읽으면서 의문을 풀어볼까 했지만, 논문에 담긴 너무나도 많은 오류에 회의감은 오히려 더 커져만 갔다.
회의감은 곧 의심과 분노로 변했다. 박 연구원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공할 수 없는 북한 체제의 실상을 마주했고, 동시에 모든 믿음이 깨졌다고 술회했다. 그래서 그는 24살이란 나이에 탈북을 결심했다. 북한이라는 거대한 감옥을 벗어나야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4월 북한이 은하2호 시험발사에 성공한 날 두만강을 건너 북한을 빠져나왔고, 중국 단둥을 거쳐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발을 디뎠다.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박 연구원은 3가지 정도 시나리오를 갖고 왔다. 그 중에서 그가 선택한 건 공부를 더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박 연구원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 재료공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2018년엔 국내 굴지 대기업인 현대제철에 입사해 연구개발본부에서 자동차 엔진·변속기·파워트레인용 부품소재를 연구했다.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박 연구원은 한국에서 뜻을 펼치기 시작했고, 꿈을 향해 발걸음을 지속했다. 하지만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북한이었다. 그는 업무를 계속하면서도 북한의 체제를 알리고 북한의 무력도발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통일비전연구회·샌드·모자이크코리아 등 남·북한 청년모임에 적극 참여하며 활동해오기도 했다.
그가 현실정치에 발을 들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그것이었다. 박 연구원은 국방대학교를 다니면서 누구보다도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자금이 핵무기 개발에 투입되는 사실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그 때문에 북한 인민의 삶은 더 궁핍해졌고 북한의 무력은 더 강해졌는데, 이 같은 일이 한국으로 넘어온 다음에도 재발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견디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박 연구원은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칼럼을 한 언론에 게재하기도 했다. 당시 그를 아꼈던 지도교수는 박 연구원에게 절대 눈에 띄는 활동을 않겠다는 각서를 받을 정도로 그의 정치개입을 막았다. 그럼에도 박 연구원의 눈과 마음은 정치로 쏠렸다. 그런 상황을 알았던 듯 국민의힘이 적절한 시기에 박 연구원에게 영입제안을 했고, 그는 이를 수락하면서 현실정치에 몸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박 연구원은 "탈북할 때도 '혼자 잘먹고 잘살자'는 생각으로 오지 않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고민 끝에 (정치 입문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운명이라면 '정면돌파 해보자. 정치를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 입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배경이 배경인 만큼 북핵 관련 이슈는 박 연구원의 최대 정치적 쟁점이다. 그는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완벽한 핵억제력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를 더 강화하는 약속을 얻어낸 건 아주 중요한 성과다. 그럼에도 핵공유를 비롯한 더 완벽한 핵억제력 확보를 위한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을 바로 국회가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의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북한이 도발을 통해서 반드시 손해보도록 해줘야 한다"며 "지금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김정은 정권이 인정하도록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약점을 정밀하게 분석해서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박 연구원은 자신이 직접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 와있는 탈북민이 3만4078명이다. 탈북민 커뮤니티는 10만명 정도가 된다. 이들의 존재는 중요한 안보자산이자 데이터베이스가 될 수 있다.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에서는 정부의 무관심과 핍박으로 별볼일 없게 여겨지던 사람들이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또 정치권에 투신해 국회의원이 되고 정부에서 요직을 담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 북한 엘리트도 엄청나게 흔들릴 것이다. 내가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면 바로 그런 역할의 단초가 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박 연구원은 산업현장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위한 정치적인 역할 역시 꼭 담당해보고 싶은 분야로 꼽았다. 그는 "우리 정치는 과도한 기업 규제와 경직된 노동 시장 문제를 꼭 해결해줘야 한다"며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규제들로 여러가지 불편함을 겪었고, 이로 인한 비용 지출이 큰 것도 봤다. 최근 도입된 하도급법, 중대재해처벌법이 대표적"이라고 운을 뗐다.
또 "비정규직 보호법도 마찬가지다. 이 법 때문에 2년이 채 되기 전에 무직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대기업은 이 때문에 자회사를 하나 만들어야 해 관리가 어렵고 비용 지출이 커지는 모습을 봤다. 이런 환경은 결국 우리 기업들의 제품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며 "노사 관계도 마찬가지다. 잦은 파업과 보상에 대한 지나친 요구로 인해 기업 경영에 큰 지장이 발생하는 일이 많다. 국내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중국산과 일본산에 양쪽으로 치이는 상황이 됐다. 이런 부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힘줘 말했다.
우리나라 정치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현재 국회의 비정상적인 상황이 한몫 했다는 게 박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거대야당 당대표 한 사람을 위한 방탄 국회가 국가가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묶어둔 발목잡기 국회를 만들었다"며 "당리당략에 막무가내식 정부 견제, 흠집내기, 방탄입법이 이뤄지며 민생현안들은 볼모로 잡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안이 통과되지 못해 아무 준비도 없이 많은 중소사업장들이 위기에 처한 것이나 산은법 개정이 지연된 것이 그런 예"라며 "거대 야당이 강행처리한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쌍특검법 등은 민생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고 정부 부담만 늘리는 포퓰리즘 법안이자 헌법 질서에 어긋나는 법안들이다. 결국 방탄국회가 국정 발목을 잡은 셈"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연구원은 우리 정치가 4류라는 평가를 받게 된 원인이 86운동권에 있다는 주장도 내놨다. 그는 "아직도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북한 정권을 추종하고, 우리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과 질서를 불편해하고, 여기서 어긋나는 이데올로기와 철학으로 무장한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 '수상한 사람' '추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기득권을 형성했기 때문에 정치는 4류보다도 퇴보했다는 말을 듣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월급 한번 벌어본 적 없는 사람이자 기업들이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서 얼마나 힘겹게 노력하는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한평생 해본 것이라곤 반대 밖에 없는 사람들, 대안은 없고, 있다 하더라도 시장에 대한 이해 하나 없이 옛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배운 것에 기반하는 백해무익하고 나라 재정을 좀먹고, 미래성장동력을 깎아먹는 포퓰리즘 정책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러한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운동권 특권, 무능 정치를 이제는 끝낼 때"라며 "쟁쟁한 후배들의 길을 막고 우리 사회의 발목을 잡지 말고 이런 분들 모두 집에 가시고 선진문명에서 성장하고 열심히 살아온 후배들에게 이제 넘겨주셔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다.
박 연구원은 자신이 이런 정치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실력과 성과로 승부보는 정치를 하고 싶다. 더 좋은 공약과 정책, 그 실행에 의한 성과들로 승부 보는 그런 정치"라며 "남북한 간의 극단적인 격차를 극복해본 한 사람으로서 우리사회의 각종 격차 해소에 기여하는 역할을 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한국에 도착했을 때의 탈북민 청년 박충권과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 박충권은 다르다. 이러한 성장 경험이 우리 사회의 각종 격차 해소를 위해 일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외에도 청년들에게 활력 있는 창업 생태계를 제공하고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일에도 기여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차근차근 하나씩 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