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하청노조 점거농성…매일 손해만 눈덩이
“대우조선이 죽어야 끝나나”…‘마음의 문’ 열고 협상 나서야
경영정상화만을 바라보던 대우조선해양의 꿈이 자꾸만 무너져 간다. 운명을 거스르고 ‘세금 호흡기’로 연명했던 게 문제였을까. 이쯤 되면 누가 망하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 같다. 마침내 주인을 찾는가 싶더니 수포로 돌아가고, 최근 수주 호황으로 살겠다싶더니 이번엔 하청노조가 말썽이다. 단순 파업도 아니고 팔아야 할 선박에서 점거농성을 펼치니, 경영정상화는커녕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달 2일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지급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하청지회는는 소속된 협력업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달 22일부터 1도크에서 건조 중인 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점거해 농성을 펼치고 있다.
당연히 선박 진수는 중단됐다. 설립된 1973년 이후 처음 발생한 일이다.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선박 4척 인도는 무기한 연기됐으며, 내업 공정도 중단되게 생겼다. 2도크와 플로팅 도크는 4주, 안벽에 계류된 일부 선박들도 인도가 1~3주 지연됐다.
이외에도 직원 폭행, 에어 호스 절단, 작업자 진입 방해, 고소차 운행 방해 등 여러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액도 만만치 않다. 하루 매출과 고정비만 320억원이 나가고, 지난달에만 2800여억원 이상을 날렸다.
가장 큰 문제는 1도크 가동을 언제 재개할 수 있을지 기약조차 없는 것이다. 이들이 점거를 풀지 않는 이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넋 놓고 지켜만 봐야한다.
하청노조는 협상의 여지없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전까지는 점거를 풀지 않겠다는 태세지만,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다. 애초에 원청 소속이 아닌 하청노조의 임금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 올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을 3% 인상시킨 것도, 원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설령 하청에 대한 개입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국민 혈세를 지원받아 회생 작업을 진행 중인데다, 수년 간 수조원의 적자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형편에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지급이라는 요구를 수용하는 것도 무리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공권력 개입을 통한 점거농성 강제 해제밖에 바랄 수 없는 형편이다. 박두선 사장은 물론 임직원, 협력업체 대표들까지 모여 이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1일 임직원들은 출근을 포기하고, 협력업체 대표들은 거제도에서부터 서울까지 먼 길을 올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 중 일부는 하청노조의 불법 점거에 따른 조업 중단으로 폐업했거나 폐업을 결정한 상태다.
하청노조 입장을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노동 강도에 비해 적은 임금으로 인력들이 조선업계를 떠나는 판에, 불만이 없는 게 이상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 본인들의 상황을 단단히 일러주고자 ‘끝장농성’에 나섰을 터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불법행위로 본인들 명분만 퇴색시키고 있다. 가뜩이나 힘든 재정에 기름을 퍼붓고 불을 붙이는 식의 행위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점거농성에 나선다고 몇 년 간 수조원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 사정이 나아질 리 있겠나.
국민 세금으로 겨우 살아남은 대우조선해양이 또 다시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니, 민심 또한 하청노조를 외면하고 있다. 이들로 대우조선해양은 물론 조선업계 산업 근간마저 흔들리게 생겼단 우려도 나온다.
하청노조가 진정 원하는 게 ‘공멸’이 아닌 처우개선이라면, ‘협상’이라는 차선책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조속한 합의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을 넘어 오랜 침체기에 있던 조선업계가 맘 편히 황금기에 진입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