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위축된 국내 증시 추가 악재
美 자이언트 스텝시 금리 역전 현실화
유동성 위축에 자금 유출 가속화 우려
한국은행의 빅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5%p 인상) 단행과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 가능성이 커지면서 올 하반기 증시에 먹구름이 잔뜩 낀 모습이다.
물가 상승률 6% 시대가 도래하는 등 인플레이션(물가 지속 상승)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한국은행이 사상 첫 ‘빅스텝’ 단행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증시 유동성 위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에 이어 이달 말에도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p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한-미간 금리 역전에 따른 자금 유출 가속화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사상 최초로 빅스텝 단행이 유력한 상황으로 증시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6월 국내 국내 소비자물가지수가 108.22로 전년 동월대비 6% 상승하면서 물가상승률 6% 시대를 연 것이 결정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원자재·곡물 가격 상승에 원화 약세로 인한 수입물가 급등에 따른 것으로 연초 2~3%대였던 물가상승률이 3월(4.1%) 4%대, 5월(5.4%) 5%대 진입한데 이어 이제는 6%대로 올라선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물가 상승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결국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빅스텝 단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하반기에는 전기료와 가스비 가격 인상 등으로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질 가능성이 커 기대 인플레이션(미래 인플레이션·향후 물가상승률)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상황이다.
높은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것이 다시 물가 상승을 부채질 하는 임금·물가 간 상호작용(feedback)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은의 빅스텝이 현실화되면 가뜩이나 위축될대로 위축된 국내 증시에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채권 가격 하락으로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에 대한 매력도를 떨어뜨리면서 증시 자금 이탈이 한층 심화되면서 높아질대로 높아진 증시 변동성을 더욱 키울 전망이다.
또 ‘빚투’(빚내서 투자) 등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여력 감소를 불러와 증시 유동성을 한층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이 더욱 어려워져 투자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실적이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이래저래 증시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증권가에서는 한은이 빅스텝을 단행하더라도 이달 말 미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하면 한-미간 금리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앞서 연준은 지난달 14~15일 개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지난 1994년 이후 28년만에 처음으로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한 바 있는데 오는 26~27일 열리는 FOMC에서 한 번 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공개된 지난달 FOMC 의사록에서 연준 통화정책 위원들이 미국 경제에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정책 대응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입장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에 강력한 금리 인상 기조를 견지하면서 연이은 자이언트 스텝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경우, 현재 한국(1.75%)과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1.50~1.75%)이 1.75%로 동일한 상황이어서 기준금리 역전은 불가피하다.
금리가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자본의 특성상, 국내에서 해외로의 자본 유출은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증시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의 순매도 강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일부터 지난 11일까지 한 달여간 외국인은 유가증권 시장에서 5조6081억원을 순매도했다. 같은기간 코스닥 시장에서도 6787억원을 순매도해 국내 증시에서 6조원이 넘는 금액을 팔아치웠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은의 빅스텝 단행 하나만도 버거운데 한-미간 금리 역전까지 현실화되면 증시는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며 “올 하반기 힘겨운 행보가 이어질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준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그 효과가 당장 나타나는 것은 아니어서 증시에 미치는 악영향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시장에서는 긴축 강화 기조로 국내 증시 침체가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기태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준 금리를 인상해 수요를 누름으로써 인플레이션을 낮춘다는 것이 미 연준의 계획이지만 시간이 걸린다”며 “과거 평균적으로 금리 인상이 시작된 지 15개월 후에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리 인상이 깔끔하게 물가 하락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자비용이 오르면 기업들이 이를 전가하는 과정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