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경·이선빈 주연...22일 개봉
2011년, 전국을 충격에 빠뜨린 ‘공기 살인자’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세상에 드러난 지 올해로 12년째를 맞았다. 피해자는 수천명, 사망자만해도 1000명이 넘는다.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이 기나긴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여러 차례 진상 조사와 조정 과정을 거쳤음에도 마무리되지 않는 이 참혹한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영화 ‘공기살인’은 제목 그대로, 12년 전의 이 참사를 소재로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 한 순간에 폐병에 걸려 사망하고,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정태훈 교수(김상경 분)는 죽은 아내의 사망 원인을 찾기 위해 직접 부검을 하고, 비슷한 사례의 환자를 찾아 나선다.
실제 참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범죄 스릴러의 형태를 띤다. 태훈과 그의 조력자이자 처제 한영주(이선빈 분)이 원인 모를 죽음의 이유를 밝혀나가는 과정을 통해 서스펜스를 만들어간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물질이 들어가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 허가조차 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회사, 그리고 이를 허가한 국가 관계부처들, 원인이 밝혀졌음에도 책임회피에만 급급한 원인 제공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살인자’로 해석된다.
특히 영화는 누구나 할 법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텔링에 힘을 얻는다. 실제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임에도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관련된 기업들은 피해 구제에 소극적다. 관계 당국의 각 부처도 안전관리에 책임이 있지만 처벌은 요원해 보인다. 지금도 진행 중인 실화라는 점에서 작품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후반부 반전이 있으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재벌이나 기업에 대한 클레셰적 설정은 다소 진부하다. 작품 안에 비극적인 실화의 무게와 상업영화의 오락성이라는 모순을 함께 담아내려고 한 탓인지 어느 한 쪽의 장르라고 정의하기엔 느슨한 면도 있다.
다만 이 영화가 어렵사리 개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영화의 원작인 소재원의 소설 ‘균: 가습기 살균제와 말해지지 않는 것’(2016) 집필 당시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영화화가 결정된 뒤 개봉까지 무려 6년이라는 제작기간이 소요됐고, 그동안 시나리오는 97고가 나왔다. 아직 해결되지 않는 사건인 터라 상황이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고, 영화는 이를 새로이 반영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는 시민들의 분노가 불붙고, 언론도 이런 흐름에 가세했다. 앞으로도 지속적 치료가 필요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있고, 사망자와 유족들의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차가워진 것이 현실이다.
진실이 왜곡되고 정의의 의미가 변질되는 시기, 완성도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한 편의 영화가 우리에게 희미해지고 있는 또 하나의 비극을 각성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