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7곳 IPO 일정 철회·연기
공모가 하단 미만 확정 5곳 달해
공모 시장 고전·종목 차별화 지속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국내 증시가 침체되면서 기업공개(IPO) 계획을 접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공모주들이 잇따라 청약 철회에 나선 가운데 목표한 기업가치를 달성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약물 설계 전문업체 보로노이는 지난 22일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초 보로노이는 오는 30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4~15일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계획한 기관투자가 대상 공모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보로노이는 공모가 희망밴드를 주당 5만~6만5000원으로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들의 참여가 기대에 못 미쳤다.
보로노이는 ‘유니콘 특례 1호’ 상장 타이틀로 주목을 받아왔다. 유니콘 특례 상장은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에 한해 외부 전문평가기관 한 곳에서만 기술성 평가를 받으면 상장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다. 보로노이는 향후 상장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효력은 승인 후 6개월간 유지된다. 오는 6월 6일 전까지 심사를 다시 받지 않고 공모 재추진이 가능하다.
보로노이 관계자는 “최근 변동성이 높아진 시장 환경 속에서 당사의 기업가치를 정확하게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과 투자자 보호 등 상장 이후 상황을 고려해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수요예측 부진으로 공모 일정을 철회하거나 미룬 기업은 올해 들어 보로노이를 포함해 세 번째다. 지난 1월에는 올해 대어 중 하나로 꼽힌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상장 일정을 철회했고 2월에는 신재생 에너지솔루션 기업 대명에너지가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한국의약연구소와 파인메딕스, 미코세라믹스 등 코스닥 상장 준비 기업들은 예비심사 단계에서 심사 청구를 철회했다.
공모 시장 분위기도 가라앉았다. 이달 말까지 스팩을 제외하고 일반 기업 중 IPO 수요예측에 나서는 기업이 전무한 상황이다. 3월 넷째주(21일~25일)에는 키움제6호스팩(기업인수목적회사) 1개사만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같은 기간 지투파워와 유진스팩8호 등 2곳은 일반투자자 청약을 진행한다. 12월 결산법인들의 주주총회 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상대적으로 위축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양극화도 두드러지고 있는 모습이다. 독자적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차 부품 및 전자 부품을 개발·생산하는 세아메카닉스는 지난 10~11일 진행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1813대 1이라는 경쟁률을 기록했고 공모가를 밴드(3500원~4000원) 상단을 웃도는 4400원으로 확정했다. 일반 청약 경쟁률도 2476대 1에 달했다.
반면 ‘플러스 사이즈’ 여성의류 전문몰 공구우먼은 지난 7~8일 진행한 수요예측 경쟁률이 57대 1에 그쳤다. 청약 경쟁률 역시 7.5대 1로 저조했다. 올 들어 공모가를 희망범위의 최하단 미만으로 확정한 기업은 1분기에만 인카금융서비스, 노을, 스톤브릿지벤처스, 모아데이타, 공구우먼 등 벌써 5곳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총 6곳이 공모가보다 낮았다.
올해 IPO 최대어인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본격화된 미국발 금리 인상과 유동성 축소 조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이 공모주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러한 악재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종목별 차별화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며 수익률과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렸던 IPO 시장인 만큼 시장의 긴축 가능성이 높아진 현 시점에서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적절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