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사업 떼어내는 방식으로 변질
“물적분할 금지” 눈물의 국민청원
증시, 자산증식 역할에도 충실해야
대기업들이 핵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재상장시키는 ‘쪼개기 상장’에 나서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눈물을 뽑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잇따라 물적분할을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회사의 일방적인 결정 속에 주주권익이 전혀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이 불공정 이슈로 확대됐다.
물적분할은 기존 회사(모회사)가 신설회사(자회사)의 주식을 100% 소유하는 방식이다. 물적분할은 인적분할과 달리 모회사의 주주가 신설 법인 주식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 반면 지배주주는 모회사 지분만 가지고도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기존 주주들 입장에선 알짜 사업이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신규 주주 유입으로 가치가 희석된다. 지배주주들의 들러리만 서게 되면서 모회사의 주가 타격까지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과거 물적분할은 부실 사업이나 합작 투자 등을 위한 기업 분할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기업들이 대규모 자금 조달을 위해 핵심 사업을 떼어내는 방법으로 변질됐다. 한국거래소의 기업분할 공시를 보면 지난해 기업분할이 이뤄진 50건 중 47건(94%)이 물적분할에 달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분할이 대표적이다. 앞서 두 회사는 성장성이 큰 배터리사업부를 떼어내 상장시킨다는 소식에 주가가 급락했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선 쪼개기 상장에 따른 주가 폭락이 한국 증시의 악습으로 자리 잡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기업의 물적분할을 금지시켜달라는 취지의 글이 넘쳐난다. ‘물적분할이 공매도보다 무섭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감이 심해진 상태다. 포스코의 경우 기존 법인을 지주사로 전환하고 핵심인 철강 사업을 물적 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회사를 상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대주주에 유리한 ‘쪼개기 상장’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이 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해상충 가능성과 자회사 주주의 집단 소송 우려 등으로 모회사와 자회사가 이중상장하는 경우가 드물다. 최근 국내에서 관련 제도를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기업들은 사업 개편 시 적극적인 소통 노력으로 주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일방적인 물적분할은 기업을 믿고 미래 성장성에 투자한 주주들에게 깊은 배신감을 남기는 일이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중요한 자금조달 창구지만 자산증식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해야 한다. 신뢰가 무너진 투자자들이 증시를 이탈하고 시장 활력이 떨어지면 해외 자본시장과의 본격적인 경쟁은 한발 더 멀어지게 된다. 이제는 소액주주들의 권익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