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희망밴드 하단 유력
시총 업계 최상위권 부담
현대엔지니어링이 기관 참여율 저조로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했다. 반전이 절실하지만 시장에선 이전 기업공개(IPO) 대어 상장 사례에 비춰 일반 청약 흥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5~26일 양일 간 진행한 수요예측 결과 경쟁률이 100대 1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공모가는 희망밴드(5만7900~7만5700원) 하단 결정이 유력하게 점쳐진다.
첫 날 수요예측에 200여개 기관이 참여했고, 둘째 날도 비슷한 흐름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 수요예측 경쟁률이 2023대 1, 주문액이 1경5203조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수요예측 결과는 최종 공모가액을 확정한 이후 오는 28일 공시된다.
증권업계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수요예측 부진의 원인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붕괴사고 등으로 인한 건설주 투심 악화를 지목하고 있다. KRX건설지수는 이달 들어 전날까지 10.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률(-9.01%) 보다 더 떨어졌다.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점도 기관 참여를 떨어뜨린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이번 IPO로 공모하는 물량은 1600만주다. 이 중 신주는 25%인 400만주에 불과하고, 나머지 75%인 1200만주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을 비롯한 특수 관계인 5인이 매각한다.
통상 구주매출이 높으면 공모로 조달한 투자금이 기존 주주의 몫으로 돌아가 공모주 매력을 낮춘다. IPO의 주목적이 신규 사업을 위한 투자금 확보라는 점에서 사업 확장 기대감이 줄기 때문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이 IPO로 확보한 자금은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쓰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의선 회장은 전체 구주의 약 45%인 534만1962주를, 정몽구 회장은 142만936주를 매각해 최소 3800억원에서 최대 5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 자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사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정의선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통해 기타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데, 현대모비스 지분은 0.32%에 불과하다.
◆크래프톤 재현? 고평가 부담
IPO대어들도 수요예측 성적이 저조할 경우 공모 부진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더러 관측된다. 이에 시장은 공모 흥행을 위해선 험난한 길을 예상한다.
지난해 크래프톤은 IPO 당시 수요예측 결과 경쟁률 245.15대 1을 기록했다. 이어 진행한 일반 청약에선 경쟁률 7.79대 1을 기록했고, 증거금은 5조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수요예측 부진에도 공모가를 희망밴드 최상단으로 결정하는 등 무리한 일반 청약 진행이 고평가 논란을 부르며 발목을 잡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는 현대엔지니어링도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희망밴드 하단(5만7900원)으로 공모가를 책정해도 예상 시가총액은 4조6293억원에 달한다. 이는 모회사인 현대건설(4조3429억원)이나 경쟁사인 삼성엔지니어링(4조1160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이때문에 일각에선 공모 일정을 연기하거나 철회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만, 현대엔지니어링 측은 연기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공모 일정을 변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