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코멧' 배우 동선 소극적으로 변경
'위대한 개츠비'는 조기종영
가상현실로 관객참여 유도...'비비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전 공연계의 뜨거운 이슈는 ‘이머시브 극’이었다. 관객을 무대로 초대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애 극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실험적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우리 일상을 바꿔버린 코로나19는 이런 공연계의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었다.
지난 2019년,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 ‘까마귀의 눈’은 이상의 대표작 ‘오감도’를 모티브로 제작한 즉흥극이자, 이머시브극이었다. 연출가가 직접 무대에 올라 배우들에게 상황에 맞춘 행동과 대사를 제시하고 관객은 미술관을 거닐 듯 배우들 사이로 들어가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고 반응한다. 관객들의 움직임은 그날 공연의 변수로 작용한다.
같은 해 대학로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쉬어 매드니스’도 공연됐다. 이 작품 역시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극으로 살인사건 용의자를 찾는 과정을 그리는데, 관객은 각 인물의 알리바이를 들으며 범인을 추리해 나간다. 이에 따라 매 공연의 추리 과정과 엔딩도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피츠제럴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위대한 개츠비’는 물론 ‘로마비극’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 자’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이머시브극이 2019년 관객들을 만났다. 업계에선 큰 몰입감을 주고, 창작자로 개입하길 원하는 관객의 마음을 대변하는 이머시브 공연이 활발하게 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다시금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이머시브극은 ‘그레이트 코멧’이다. ‘그레이트 코맷’은 당초 2020년에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개막이 연기돼 올해 3월부터 무대에 올려졌다. 원래 예정됐던 공연 중 배우의 동선도 소극적으로 변경됐다.
본래 공연장 로비부터 관객들이 직접 관객을 맞이하고 공연 내내 객석 사이를 누벼야 하지만, 안전을 위해 동선을 최소화 한 것이다. 또 배우들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음료를 나눠 마시는 등의 퍼포먼스 등의 장치도 모두 제외됐다. ‘위대한 개츠비’도 완주를 하지 못한 채 지난해 2월 조기 종영했다.
현재도 ‘이머시브’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공연들이 진행되곤 있지만 대부분 ‘그레이트 코멧’과 마찬가지로 동선에 변화를 주거나, 직접 접촉 없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상 기존 이머시브 공연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업계에선 사회, 문화 전 분야에 걸쳐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메타버스’가 이머시브 공연의 빈자리를 채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 예로 2019년 사전 제작을 시작해 2020년 시범공연을 거쳐 올해 본공연을 선보인 ‘비비런’을 들 수 있다. 이 공연은 고성오광대 탈춤 춤사위에 가상현실(VR) 기술을 결합시킨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관객들은 VR 전용 고글을 쓰고 비비와 비비런이 등장하는 한편의 3D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게 된다. 바로 눈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비비와 비비런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관객들이 비비와 비비런을 응원하면서 북을 치고, 바닥의 눈덩이를 집어던지는 등 단순하나마 극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하듯 극에 동참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기존의 이머시브 공연을 대체할 것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비비런’과 같은 공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시도이고, 획기적인 발상으로 시작된 하나의 독자적 콘텐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머시브 공연의 가장 큰 강점은 직접 배우들과 부딪히고 주체적으로 극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상현실이 아무리 몰입감이 좋다고 해도 현장에서 직접 배우들과 부딪히고 관여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최근 많은 온라인 공연이 생겨나고 있지만, 공연장의 현장성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코로나 시대에 따라 이머시브 공연이 사실상 힘든 시기를 마주하게 됐지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또 그 때의 시대와 맞물려 관객을 무대의 주체로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