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다른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지위가 사랑 받기 위한 전제조건?
'신변보호 중 스토킹 살해' 5회 신고에도 피살…층간소음 흉기난동, 출동경찰 현장이탈
경찰, 이재명 아내 김혜경 취재 기자들에겐 '스토킹' 경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불안>에서 사랑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사랑을 '지위가 높은 이'들이 독점하는 듯 하다. 소방 당국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를 구급 이송한 사실을 별도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출동했던 119대원들을 질책한 일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지위가 낮은 이'들은 사랑받지 못한다. 지난 19일 집요한 스토킹에 시달리다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근 5개월간 5차례나 경찰에 신고했으나, 끝내 도움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생전에 경찰이 증거를 달라고 하는 상황을 답답해했다고 한다. 그녀는 숨진 당일에도 두 차례에 걸쳐 스마트워치로 경찰에 긴급호출했는데도 경찰은 이를 막아내지 못했다.
최근 인천의 한 빌라에서 층간소음 문제로 일어난 칼부림 사건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가족은 사건 발생 전부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이웃 간 단순 다툼으로 여기고 되돌아갔다. 위협을 느낀 피해자들은 두 번째 신고를 했으나, 출동한 경찰은 범인이 칼부림을 벌이며 난동을 부리는 현장을 보고도 벗어났다. 결국 피해자는 흉기에 찔렸고, 피해자 남편이 칼에 베여가며 몸싸움을 벌여 가해자를 제압했다.
시민들이 이번 사건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에 분노한 이유는 단순히 시민을 지키지 못해서가 아니다. 지위가 사랑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인 상황에서 앞으로도 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희생자와 피해자가 나타나고 이들이 처절하게 울부짖고 더 강하게 몸부림치고 더 세게 고통을 표현하고나서야 뒤늦게 주목받는 사실이 뻔해도 너무 뻔해서다.
지난 15일 경찰은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 자택 인근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 5명에 대해 스토킹 처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해당 기자들은 김씨가 병원으로 이동하자 차량으로 따라붙은 것으로 전해졌고, 기자들이 유명 인사를 취재하는 행위인 이른바 '뻗치기'에도 '스토킹' 찬반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후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누군가의 사랑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그렇지 않아 웃플(웃기고 슬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