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
웃음이 도처에 깔렸지만 뒤돌아서고 나면 사람과 사랑, 그리고 이것들을 연결해 주는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배우 조은지의 첫 상업 연출작 '장르만 로맨스'가 코미디 연기로 관객들에게 친숙한 류승룡을 내세워 코로나19 시기에 우울했던 감정을 걷어낸다.
'장르만 로맨스'의 중심을 잡는 김현(류승룡 분)은 7년 전 전 국민적으로 사랑받은 책을 내놨지만, 이후로 도무지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아내인 혜진(류현경 분)과 바람을 피워 미애(오나라 분)와 이혼했고, 아들 성경(성유빈 분)은 사춘기다. 기러기 아빠로 지내고 있던 현 앞에 혜진이 갑자기 찾아오고, 제자이자 동성애자 유진(무진성 분)도 현의 인생에 끼어든다. 전 아내 미애와의 관계도 아들 때문에 지지부진하게 이어가며 오해를 낳는다. 그리고 사실 전 아내 미애는 현의 절친 순모(김희원 분)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사실 자신의 인생을 꼬은 건 현 자신이다. 모두가 그의 선택으로 이뤄진 관계들로 인생을 피곤하게 만드는 일 투성이지만 이 관계로 인해 삶을 살아가는 활력을 얻는다. 얼핏 현은 비호감일 수 있는 캐릭터지만 류승룡의 친근하면서도 명랑한 연기가 더해지며 응원을 부른다. '7번 방의 선물', '극한 직업' 등을 통해 보여줬던 류승룡의 전매특허 코미디 연기가 지질할 수록 짠한 웃음을 선사한다.
오나라는 전 남편 현을 신경 쓰면서도 현재의 애인 순모 사이를 오가는 미애의 존재감을 설명한다. 두 남자를 카리스마 있게 다루는 미애의 모습은 오나라가 아닌 다른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신예 무진성이다. '장르만 로맨스'로 첫 스크린에 도전한 무진성은 김현을 짝사랑하는 성소수자를 연기했다. 선배인 류승룡과 붙어도 어색하지 않고 자신만의 완급조절을 해나가며 유진의 캐릭터에 설득력을 불어넣는다.
쓸쓸하고 차가워보이는 외면과 달리, 현의 앞에서 자꾸만 무장해제되는 유진은 사랑에 이제 막 눈을 뜬 관객 각자의 경험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은지 감독은 첫 상업 데뷔작에서 이혼가정, 성소수자, 유부녀를 좋아하는 고등학생 등 까다로운 설정들을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연출력을 뽐냈다. 여기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말맛'이 속도감 있게 오가며 영화의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장르만 로맨스'의 미덕은 사람 사이에서 주고 받는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억지로 웃기려 하거나,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안성맞춤이다. 17일 개봉. 러닝타임 11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