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략적 모호성' 기반한
기존 핵정책 변경 검토
북중러 억지력 약화 우려
미국이 핵정책 전반을 다루는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 발표를 2개월여 앞두고 관련 회의를 개최해 기존 핵정책인 '전략적 모호성' 유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제 불사용' 선언과 공격한 상대에게 보복용으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단일 목적' 선언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미국 동맹국들은 관련 구상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는 분위기다.
10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프랑스·영국·일본 등은 바이든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을 선언하지 않도록 물밑에서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특히 미국의 핵정책 변화가 △중국 등에 '잘못된 메시지'가 될 수 있고 △억지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관련해 미국의 방위 의지를 거듭 확약받고 있지만, 미국 핵정책의 전략적 모호성이 사라질 경우 중국의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실제로 신문은 "중국이 요격하기 어려운 극초음속 무기개발에서 미국과 격차를 벌리는 등 군사 균형이 미일보다 중국 우위로 기울고 있다"며 중국 관련 안보 우려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미국의 핵정책 변화는 한반도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핵강국'을 자처하는 북한이 우리나라를 겨냥한 소형 전술핵 등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소극적 핵사용 가능성'은 대북 억지력 약화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NPR 보고서에 바이든 행정부가 핵 선제 불사용 원칙과 단일 목적 원칙을 명시하는지, 기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EU와 일본은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 원칙과 단일 목적 원칙을 넣지 않도록 활동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일본이나 EU 등에서 그 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는 보도는 다 접하고 있다"면서도 "이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부담이 된다"고 밝혔다.
서 실장은 미국의 관련 논의 배경으로 "민주당 오바마 정부 때부터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며 "바이든 대통령도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핵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만 (핵을) 쓴다고 유세 때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핵확장 억제에 대한 확고한 보장과 이행의 문제"라며 "핵과 관련한 방어적 안보에 위협이 안 되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는 충분히 입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핵정책 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불확실성보다 미국이 거듭 약속해온 확장억제에 대해 신뢰를 표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편 워싱턴 외교가와 직접 소통하는 주미대사관 측은 미국의 핵정책 변화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맹 복원·존중을 끊임없이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가 여러 동맹국이 반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긴 어렵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