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한 정보 제외...美 상무부 추가 조치 가능성 열어놔
엇갈린 전망 속 정부 대응 필요성...문승욱 장관 美 출장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상무부가 요청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서 이제 관심은 미국의 반응과 향후 대응에 쏠리게 됐다.
이번에 제출한 자료의 보완 및 추가 정보 제공 요구나 반도체 관련 다른 압박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가운데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도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DB하이텍 등 국내 주요 반도체업체들은 9일(현지시간 8일) 미국 상무부가 요구한 반도체 공급망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미 상무부는 앞서 지난 9월 말 반도체 공급망 현황을 조사하겠다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에게 고객사 정보, 제품별 매출, 재고 수량과 주문 내역 등 총 26가지 문항을 자료 형태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제출 마감시한은 이날 오후 2시(미국 현지시간 8일 자정)이었다.
이들은 상무부에 제출한 자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고객사와 관련한 민감한 정보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제품 공급 계약시 체결한 영업상 비밀유지 조항을 준수하고 고객과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제공 가능한 수준의 자료만 제출했다.
이는 국내 기업들보다 앞서 자료를 제출한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도 궤를 같이한 것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타이완 TSMC, 미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타이완 파운드리 업체 UMC, 이스라엘 파운드리업체 타워세미컨덕터 등은 매출액 등 일반적인 내용들만 기재하고 고객사 및 제품 재고 현황 등 민감한 항목들은 아예 비워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서 이제 시선은 자연스레 미 상무부로 쏠리게 됐다. 기업들이 제출한 정보가 당초 미 상무부가 요구한 것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사태로 불거진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에서 각 기업들에게 정보 제공을 요청한 만큼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할 경우 자료의 보완이나 추가 정보를 요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각 기업별로 이같은 요구가 이뤄질수도 있다. 자료를 제출한 모든 기업들이 고객사 관련 정보 등 민감한 내용은 제외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외에 제출한 정보들의 수준은 모두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나 레이몬도 미 상무장관은 반도체 기업들이 강력한 자료 제출을 하고 있다면서도 제출한 자료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으면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에 반도체업계가 향후 미국 정부의 반응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미국의 대응에 대해 다소 엇갈리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쪽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조사가 원활한 글로벌 공급망 악화 해소에 맞춰져 있는 만큼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레이몬도 미 상무장관도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이번 자료 제출 요구는) 과도하게 반도체를 비축하는 사재기를 차단하고 공급망에서 병목현상을 파악해 개선하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조사가 이뤄지게 된 계기는 결국 지난해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사태”라며 “미 상무부가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받아 당초 요구했던 민감 정보 미제출에 대해서 일부 양해한 것도 공급망 개선이라는 목적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이번 정보 제출 요구가 반도체 자급론을 기치로 내걸고 자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만큼 무리한 요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향후 미국과 중국간 반도체 패권주의 경쟁 심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의지는 다분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분석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이나 중국이 기업들에게 무리한 요구나 압박을 해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향후 전개될 상황에 대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 세계적인 반도체 공급난이 해소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개선되기 전까지는 상황 변화의 파고가 클 수밖에 없어 신중하면서 주도면밀한 대응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기업간 원활한 소통 채널 확보와 함께 향후 미국과 중국 측의 의도와 목적을 정확히 파악해 우리의 상황과 입장을 전달해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대응력 확보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9일부터 사흘간 이뤄지는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미국 출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장관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의 후속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뤄지는 이번 방미 기간 중 레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양국간 반도체 공급망 협력 방안과 함께 국내 기업들의 이번 자료 제출 건에 대한 미국 측의 협조와 이해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