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각계각층 의견 폭넓게 수렴했다는데
산업계·전문가·발전공기업, 일제히 반발
정부가 닷새 전 국무회의에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의결했다. 2030년 탄소 감축 목표는 2018년 대비 26.3%에서 40%로 늘렸으며, 2050년에는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그래도 발생하는 탄소는 흡수해 순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각계각층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탄소 중립 이정표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산업계, 전문가, 공기업 등의 반응을 살펴보면 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의견을 수렴했다는 건지 의심스럽다. 먼저 산업계는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적극 반발하고 있다. 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기업과 산업계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감축 목표를 상향 결정했다"며 "수차례 우려를 밝혔지만 결국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원자력발전을 배제한 탄소중립은 엄청난 발전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며 쓴소리를 했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2050 탄소중립을 위한 합리적 에너지정책 방향' 세미나에서 "2050년까지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80%까지 높이면 전기요금은 지금보다 120% 인상된다"며 "계통연결, 에너지저장장치 설치, 송배전망 보강 등 누적 비용도 1500조원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공기업들까지 탄소중립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가스공사는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실에 제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의견에서 "시나리오 3안의 전원별 발전 현황의 경우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봐야 할 사항으로 사료된다"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여건(저장·간헐성) 고려 시 전력 계통 문제점과 LNG의 저탄소 에너지로서 탄소중립 역할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남부발전도 시나리오 3안과 관련해 "석탄을 대체하는 LNG 발전기 중단을 고려할 경우 사업 경제성 부족으로 에너지 전환 사업 추진이 곤란하다"는 의사를 탄소중립위원회에 전달했다. 또 "중단되는 석탄·LNG 발전기에 대한 매몰비용 발생으로 비용 보전이 필요하다"며 "발전사의 신규 사업 방향 및 건설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반영한 차기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조기에 수립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한국서부발전은 "신재생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감축 기술 적용 시 정부 지원 없이는 경제성 확보가 불가하다"며 "폐지되는 화석 기반 전원의 잔존가치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요구되며 이를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으로 재투자돼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동서발전은 "석탄발전 중단에 대한 보상 방안과 에너지 전환 지원책 마련"을 요구했다.
또 작년 기준 29%인 원전 비율을 2050년까지 6.1~7.2%로 축소하고 재생에너지는 60.9~70.8%로 늘린다는 정부 계획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력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우리나라 전기 생산의 60% 이상을 담당해오던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을 중단하거나 대폭 축소하면 앞서 노동석 연구위원의 분석대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특히 해상풍력의 발전 원가는 kwh당 279.59원으로 원전 발전 원가(54원)의 5배가 넘는다. 건설비용도 ㎿당 58억원으로 원전 1기(1400㎿) 용량의 해상풍력을 건설하려면 8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결국 막대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건설과 비싼 요금은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산업계, 전문가, 공기업들이 정부에 이러한 요구사항을 전달했음에도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좀처럼 반영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통의 산물이다. 더 큰 문제는 부작용이 현 정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제 구조나 비용 문제, 무엇보다 실천 당사자인 산업계와 기업이 감당 가능한지 과학적 연구 없이 제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차기, 차차기 정부를 함정에 빠뜨릴 것이라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