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에서 불순물 제거…친환경 원료유 재탄생
석유에서 나온 플라스틱, 다시 화학제품 원료로 '선순환'
열분해유 외에 해중합·재생 레진·친환경 소재 개발 박차
신선식품의 온도를 유지하는 아이스팩. 식품 포장에 쓰이는 랩. 한 번 쓰면 재활용이 불가능할 것 같은 이들 제품을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으로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이 같은 고민을 먼저 시작한 SK지오센트릭은 폐플라스틱에서 불순물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기술로 답을 찾았다. 이물질을 제거한 친환경 원료유로 탈바꿈 시켜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다.
친환경 연료유와 소재 개발로 탄소 저감에 앞장서고 있는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 지난 18일 찾아가봤다.
대전역에서 차로 20여 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환경과학기술원. 이곳에선 화학적 재활용 기술 중 하나인 열분해유 품질 개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는 샴푸, 식품 포장재 등은 대부분 여러 재질이 혼합돼있기에 단순히 기계적으로 분리해 재활용하기 어렵다. 첨가물을 넣고 가열해 불순물을 없애는 화학적 작업이 필요하다. 이 기술이 열분해유 기술이다.
박민규 플라스틱 CR(케미칼 리사이클) 테스크 PL은 "폐비닐을 400도의 고온으로 10시간 가량 분해하면 기체로 변하는 데 이를 다시 응축하면 열분해유가 된다"면서 "이 때의 열분해유는 원유와 성상(성질과 상태)은 비슷하지만 염소, 황, 질소 등 많은 불순물을 갖춘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런 불순물에 수소를 넣어 제거하는 것이 SK의 후처리 기술이다. 염소(CI)는 수소(H)와 만나 염화수소(HCI)로, 황(S)은 황화수소(H₂S)로, 질소(N)는 암모니아(NH₃)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정유·석유화학 공정에 활용할 수 있는 원료유가 된다.
환경과학기술원은 SK지오센트릭과 손 잡고 열분해유 속 불순물을 제거하는 후처리 기술을 개발, 열분해유를 친환경 원료유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말에는 이 열분해유를 SK이노베이션 울산CLX의 정유∙석유화학 공정에 원료유로 투입하기도 했다. 원료유로 투입된 열분해유는 다른 원유와 마찬가지로 SK에너지의 정유공정과 SK지오센트릭의 석유화학 공정을 거쳐 석유화학 제품으로 재탄생한다.
기술원 안 연구실에 들어서니 질서정연하게 정렬된 여러 대의 수소화 반응기가 보였다. 외부업체에서 가져온 갈색의 열분해유는 이 반응기 안에 투입된다.
수소와 만난 열분해유는 우윳빛을 띄며 불순물 함량은 질소(1000ppm), 염소(500ppm), 황(80ppm) 모두 1ppm 수준으로 감소한다. 정유 및 석유화학 공정으로 투입 가능한 기준을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박 PL은 "이 열분해유를 울산CLX(석유제품 생산 공장)에 투입해 정제하면 투명한 열분해유가 되며, 나프타 또는 고부가 용제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SK지오센트릭은 내년 3~4월 가동을 목표로 데모플랜트를 구축할 예정이다. 2024년엔 미국 열분해 전문업체 브라이트마크의 기술과 SK의 자체 기술을 결합한 대규모 열분해유 공장을 울산에 건설하기로 했다.
2024년 상업 가동이 시작되면 연간 20만t 규모의 폐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108만 배럴의 열분해유가 생산된다. 나경수 SK지오센트릭 사장은 지난 8월 간담회를 통해 2025년까지 생산능력 50만t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SK지오센트릭은 재활용 기술 뿐 아니라 친환경 소재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여러 가지 성분이 혼합된 복합 재질을 단일 재질로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함형택 환경과학기술원 친환경제품솔루션센터장은 이날 아이스팩 비닐, 샴푸통, 윤활유통 등 단일재질로 만든 여러 친환경 플라스틱 제품에 대해 소개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이스팩 비닐은 종이와 비닐이 혼합된 다층 구조로 만들어진다. 이를 복합 재질이 아닌 단일 재질로 만들면 재활용이 가능해 자원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함 센터장은 "두 가지 이상의 혼합된 소재를 녹이면 원하는 물성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단일 재질로 만들면 터지거나 찢어지지 않는 본연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이 적용된 아이스팩 비닐을 살펴보니 분리배출 표시가 LDPE(저밀도 폴리에틸렌)였다. 기존 제품은 2가지 이상의 재질로 만든 'OTHER'이기에 다시 쓰기 어렵지만 단일 재질이 쓰인 이 비닐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만두포장재의 경우, PE+PET+나일론을 합친 제품이 주로 쓰인다. 이를 단일 재질(PE)로 만들면 기존 포장재 보다 광택은 덜 나는 것 외에는 기존 제품과 동일한 물성을 지닌다.
이 같은 기술은 SK지오센트릭이 추구하는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Reduce) ▲친환경 소재로 대체(Replace) ▲재활용을 용이하게(Recycle) 하는 3R 솔루션(3R Solution)을 구현하게 될 전망이다.
SK지오센트릭은 이 같은 친환경 사업 전환을 통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320만t에서 160만t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넷제로(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울러 2025년까지 친환경 및 재활용 영역에서 기존 비즈니스를 상회하는 6000억원의 에비타(EBITDA)를 창출, 재무적으로도 완벽하게 그린 컴퍼니(Green Company)로 탈바꿈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