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백신물량 여유 있어
다른 나라 도울 여건 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개월여 만에 공개 대외 메시지를 내놓은 가운데 한국과 미국은 북한 비핵화와 무관한 대북 인도적 지원 의사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남북 통신연락선 10월 초 복원'을 시사하면서도 미국이 제안한 '조건 없는 대화'에 선을 그은 만큼, 향후 인도적 지원 논의가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연락선 복원 의사가 공개된 지난달 30일 향후 남북 의제와 관련해 '남북 정상 간 합의 내용'과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남북협력'을 언급했다.
유럽 순방 중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역시 유럽연합(EU) 관계자 등을 잇따라 만나 코로나19 관련 대북 인도적 지원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마스크 등 보건용품 △진단검사 장비 등 의료용품 △백신·치료제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보건·의료 용품을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백신을 추후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민간 대북지원 사업자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보건·의료 용품을 우회 지원하는 동시에 국제공조를 통한 백신지원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문 정부는 그간 △국내 백신 수급 상황 △국민적 공감대 등을 고려해 대북 백신지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방미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귀국하며 진행한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국민 접종에 필요한 물량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중으로 베트남에 100만회분 이상의 백신을 지원키로 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제 우리가 충분히 여유가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국내 백신물량에 여유가 있다며 해외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만큼, 대북 백신지원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확보 노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 정부는 '위드 코로나' 정책 도입을 시사하며 국민 접종일정까지 앞당긴 상황이다. 방역 당국이 집단면역 기준으로 제시한 '성인 80% 이상 접종' 목표 달성을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국내 집단면역 달성 시, 백신 여유분에 대한 해외 공여를 진행하며 일부 물량을 북한에 할당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대북 백신지원을 위해선 미국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수적이라 문 정부 의도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앞서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북한 비핵화와 무관한 대북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거듭 시사하면서도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접근과 모니터링"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이 직접 지원을 요청하고 △모니터링 체계가 확립돼야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적으로 밝혀왔다. 모니터링 체계란 지원물품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우선 공급되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뜻한다.
글로벌 백신 공동 구매·배분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역시 북한 요청에 따라 아스트라제네카(AZ) 190만2000회분을 지난 5월 공급할 예정이었지만, 모니터팅 체계 미비 등의 문제로 일정이 미뤄지고 있다.
로버트 킹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인도적 지원은 정치·안보 등 다른 이유에 대한 대가(bribe)가 아니라 순전히 필요에 따라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미국 법률"이라며 "대북 인도적 지원도 필요한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돼야 하지만 북한 당국은 미국 및 한국의 인도적 지원 물품 배분을 자신들이 통제하려 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토마스 쉐퍼 전 북한주재 독일대사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인도주의 지원이 이뤄질 때 신분 차별 없이 가장 필요한 주민들에게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어떻게 지원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감시(모니터링)돼야 하지만 (북한에선)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정치적 엘리트나 평양시민들에게 한정적으로 지원되는 구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라고 말했다.